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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제주읍 ③ 별도봉 일본군 진지동굴(4·3희생자 유해발굴지) 가. 소재지 제주시 화북1동 나. 개요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군을 대상으로 1948년 10월부터 숙군(肅軍) 작업 을 벌였다. 이승만이 ‘군대 내의 빨갱이를 소탕하라’는 지시로 시작된 이 작업 여 파로 다음해 7월까지 남노당 출신만이 아니라 광복군 계열 군인들까지 4,000여 명이 검거됐고, 그중 절반 이상이 총살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당시 이 사건 은 증거도 없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경우가 많아 큰 무리가 뒤따랐다. 별도봉 진 지동굴 2 은 당시 숙군작업과 관련돼 처형된 9연대 군인들이 암매장된 곳이다. 이곳 동굴에서는 언제, 어떻게, 군인 몇 사람이 학살됐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주민 김용두(2003년 75세, 남)는, “나는 사실 본적이 없어. 허지 만 이 밭을 경작하던 사람이 군복 입은 시신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흙을 조금 덮 었지만 악취가 심해 흙을 더 덮어버렸다 하는 말을 들었어”라고, 증언했다. 서귀 포에 거주하는 당시 밭주인 아들은, “부모님이 동굴 앞쪽 볼록한 곳 주변에는 절 대 농사를 짓지마라” 신신당부했다고 기억했다. 화북동 향토지도, “일제가 주민 들을 동원해 노예처럼 강제노역을 시킨 것도 문제였지만, 이 동굴이 4·3사건의 와중에서 주민들의 사형장으로 활용되었음은 더욱 안타깝다”고 아프게 서술하고 있다. 한편, 제민일보4·3취재반은 이곳 동굴 총살장까지 끌려왔던 강모 씨의 증언과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1948년 11월께 ‘9연대 숙청사건’ 후 이곳에서 9연대 군인 2) 서귀포문화원 향토사연구소, 「日本軍 陣地洞窟 및 陣地 심포지엄」, 2001. 원래 이곳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제58군을 제주도에 주둔시 켜 제주도 오름과 해안 요소요소에 최후방어선으로 구축했던 군사시설 중 하나이다. 당시 건설 기 간은 1945년 4월부터 항복 직전까지였고, 이 공사에는 제주도 전역에서 주민들이 강제동원됐다. 현재 건입동 지경의 사라봉에는 7개의 진지동굴이 남측 방향으로 구축돼 남아 있고, 화북동의 별도 봉엔 역시 남측 방향으로 11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