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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제주읍 서 먼저 학살하고, 다른 일부 주민은 골 라내 트럭에 싣고 나가 분계석에서 학살 했다. 화북리와 건입리의 경계지점이었 던 이곳에서 숙부를 잃은 양치석(2003 년 73세, 남)은, “열흘쯤 후 아버지와 같 이 시신을 수습하러 갔어. 당시 숙부님은 몸이 오그라진 상태로 죽어 있어서 시체 를 곧게 펼 수 없었어. 그때 고생했던 기 억이 나네”하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날 이곳에서는 도피자 가족으로 몰린 여성들을 포함한 20여 명이 학살됐다. 다. 현황 분계석은 별도봉에서 제주교육대학 앞 남쪽 일대를 지칭하는 말로, 지금은 제주교육대학 부지에 편입돼 있다. 당시의 흔 적은 찾아볼 수 없다. ② 누러이 (고우니모루 저수지, 4·3희생자 유해발굴지) 가. 소재지 제주시 화북2동 나. 개요 1949년 1월 8일, 화북리 주민 30여 명이 총살된 곳이다. 제주4·3연구소는 2007년 4월 이곳에서 희생자 유해발굴작업을 벌여 유류품 일부를 수습했다. 1949년 1월 7일, 무장대가 화북지서를 습격했다. 그러자 다음날 토벌대는 화 북리 주민들을 화북국민학교에 집결시켰다. 그리고는 고형권 등 일부 주민을 도 피자 가족이라며 호명했다. 토벌대는 호명된 주민들을 이곳 고우니모루 저수지로 분계석의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