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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보장해서 호송해주고…. 희극이나 비극 공연 외에 합창 도 좀 하고, 군인들은 댄스도 했어요. 그때 우리가 다닌 곳이… 안덕면 사계에서부터 안덕, 중문, 서귀포 일대 3개 면을 다녔어요. 당시 서귀국민학교 운동장에는 2 연대가 주둔해 있었거든요. 우리는 거기서 3일 동안 공 연했어요. 한 번만 하고 나오려니까 안 보내주는 거예 요. 희한하게 잘 됐거든요. 그때 학련위원장이 김호산 이었어요. 그때 역시 이경주 선생하고 원문상 선생이 각본을 다 써주고 했어요. 이경주 선생네 공이 상당히 컸죠. 원문상 선생과 이경주 선생은 중문중학원의 발전 과 학원생들의 안위만 걱정하던 분들이었어요. 그런 분 들이 예비검속돼 희생된 것이 절대 이해가 안 가요.” 다. 현황 학련합숙소였던 오두생 집은 4·3 시기 중문면사무소 바로 옆에 있었다. 현재 학 련합숙소 옛터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그 자리에 제주은행 중문지점이 자리잡 고 있다. ③ 서북청년회 사무실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중문동 2165-1번지 나. 개요 중문리에 서북청년회가 집단적으로 머문 것은 4·3 발발 1년 전부터였다. 서청 은 1947년부터 10여 명 정도 중문의 원동산 민가에 기거하고 있었다. 고 안두혁 은 4·3 전부터 횡포를 일삼던 서청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 “서청은 처음엔 원동산에 있는 한 민가의 사랑채를 빌려 10여 명이 살았습니다. 그 중문학련합숙소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