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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제주읍 이 철창을 들고 밤낮 없이 보초를 섰다. 지서는 별도로 둘레에 성담을 둘렀다. 현 재 이 모든 성담 흔적들은 남아 있는 곳이 없다. 무장대는 1948년 4월에 이어 1949년에 들어서도 화북리를 기습했다. 1948년 4월 3일: 경찰이었던 김장하(23, 남, 경찰) 가족 3명과 지서 사환 이시성 (19, 남)이 화북지서를 습격한 무장대에게 살해됨 4월 28일: 오두현(40, 남, 화북3구 구장·마을선거관리위원장)이 무장대에 학살됨 1949년 1월 3일: 무장대가 습격해 보초를 서던 김배현(43, 남), 김원호(27, 남), 박정수(33, 남), 양군찬(26, 남, 미신고)을 학살함 화북1구엔 1948년 12월 이후 2구, 3구가 초토화되자 그 주민들이 소개해 내려 왔다. 곧 1구에는 이웃마을 용강과 영평 피난민들까지 더해졌고, 마을이 피난민 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토벌대에 학살됐다. 황새왓의 김정 평 구장이 화북에 소개간 후 경찰에 학살된 것은 그 한 예에 불과했다. 한편 1구의 해안마을 곤을동은 1949년 1월 4일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 해 마을이 전소됐다. 이날 주민 20여 명이 바닷가에서 학살됐다. 그 후에도 군경 토벌대의 주민학살은 계속됐다. 1949년 1월 5일: 김기만(30, 남) 등 10명은 전날 화북지서로 연행됐다 모살불에 서 학살됨. (화북리-학살터-모살불, 참조) 이날 김여호(51, 남) 부자 등 7명도 화북과 삼양에서 학살됨 1월 8일: 강만추(27, 남) 등 30명은 전날 무장대의 화북지서 습격에 대 한 보복으로 고우니모루 저수지에서 토벌대에게 학살됨 (화북 리-학살터-고우니모루 저수지, 참조) 1월 9일: 고수주(24, 남) 등 4명은 토벌대에 의해 도두봉으로 끌려가 총 살됨 (도두리-학살터-도두봉, 참조) 1월 17일: 김신정(62, 남) 가족 3명 등 8명은 경찰에게 도그내로 끌려가 학살됨. 이날 북촌리 김이배(55, 남) 등 2명도 함께 학살됨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