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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때였어요. 하룻밤에 세 사람씩 숙직을 했어요. 학생들은 숙직실도 없으니까 모포 덮고 마룻바닥에서 하룻밤을 지냈어요. 11월 5일날 미명이었죠. 무장대가 왓샤! 왓샤! 하면 서 불을 붙였어요. 당시 거기가 기와집이었어요. 잘 타지를 않는 걸 학생들이 껐죠. 무 장대들이 한참을 여기 와서 약탈하고, 면사무소 태우고 하는데 보니까 학원은 타지를 않거든요. 그러니까 무장대들이 와서 ‘어떤 놈이냐? 죽이겠다!’ 하니 숨을 수밖에요. 무 장대가 휘발유를 뿌리고 다시 불태워버렸어요.“ 다. 현황 초기 중학원터는 이순원의 과수원 우영팟이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원룸(뜰안 채)이 자리잡고 있어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② 중문학련합숙소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천제연로 177 (중문동 2088-1번지) 나. 개요 전국학생총연맹(이하 학련) 제주도지부는 1947년 8월 18일 광복청년회 사무 실에서 학련결성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에 나운수, 부위원장에 김호산을 선임했다. 그 후 학교별로 학련을 조직해나갔는데, 각 학교마다 조직 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중문중학원의 학련은 1949년 초, 이경주와 원문상 선생의 권유로 만들어졌다. 결성 후 중문학련은 합숙소도 마련했다. 오두생 집을 이용했다. 학련은 주로 토벌 대의 토벌활동을 협조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했는데 중문학련은 중문에 주둔한 2 연대 4중대 4소대의 토벌활동을 도왔다. 이런 과정에서 신뢰를 얻었는지 토벌대 는 학련위원장에게 아무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자유통행증도 발급해주었다. 중문중학원 학련위원장을 맡았던 이치근은 중문학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