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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제주읍 11. 화북리 화북리는 서쪽으로 별도봉과 화북천을 경계로 건입리, 동쪽으로 삼양리와 접한 큰 마을로 4·3 시기에는 1구, 2구, 3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1구는 일주도로에서 화북포구로 이어지는 해안마을이었고, 2구는 일주도로 남쪽의 거로와 부록, 큰터 왓을 합한 마을이었다. 3구는 그보다 훨씬 남쪽 중산간 마을 황새왓을 지칭했다. 여기에는 녹낭굴(6호)과 장도모루(7호), 웃돌리(7호), 사장밧(4호) 같은 작은 마을 이 여럿 있었다. 현재 화북동은 2개의 법정동(화북1동, 화북2동)과 6개의 자연마 을(화북동, 중, 서마을, 거로, 황사평, 동화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화북리는 4·3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4·3 초기에는 무장대의 기습이 잦았다. 1구에 위치한 화북국민학교에 화북지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장대는 2구와 3구 의 거로마을과 황새왓에서 경찰이나 우익단체원 가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화북리 주민 대다수는 1948년 5·10선거를 거부했다. 화북동 향토지 1 는 당시 상황을 이 렇게 서술하고 있다. “1948년 5월 10일은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을 선거하는 소위 5·10선거일이었다. 1) 화북동, 『화북동 향토지』, 1991,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