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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중문면 중학원이 설립되자 입학했던 이치근은 학원 설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학원은 ‘알아야 면장 한다고 우리글을 배우자’는 취지에서 중문국민학교 교실을 하나 빌려서 10월 4일날 개교했죠. 그때 모여든 분이 월평 출신 김문규 학장. 그 분은 나중에 제주교대 학장을 했죠. 또 이경주 선생이 모든 계획이라든가 그런 것을 했고, 그 위에 여러 분들이 계셔서 했죠. 우린 10월 4일날 학원개설을 하고 공부에 들어갔는데… 교사는 중문리 향사 건물을 이용했어요. 왜정 말엽 때에 중문국민학교가 현재 위치로 옮긴 후 교실 두 개를 사서 중문 향사가 썼어요. 중학원은 향사로 쓰다 남은 교실 두 개 를 이용했던 거죠. 운동장은 좁았지만 뭐,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공부가 목적이었으니 별 문제가 안 됐어요. 우린 교실 두 개를 쓰면서 3개년 과정을 밟았어요.” 그는 중학원이 무장대 습격으로 불타는 과정을 설명했다. “거기서 3년 과정을 하는데 다음해인 1948년 11월 5일날 불을 붙여버렸어요. 입산 자들이 내려와서. 거기가 중문지서로 들어오는 길목이란 말입니다. 그때 선생들은 몇 분이 안 되니까 숙직을 학생들이 했거든요. 마을별로. 그날은 예래 학생들이 숙직을 할 중문중학원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