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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나. 개요 현재의 관음사는 1912년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이 승려 영봉(靈峰)과 도월 거사(道月居士)의 도움으로 창건했다. 관음사는 무장대의 본거지였던 어승생악과 가까운 한라산 초입에 위치해 있었다. 무장대는 4·3 초기 관음사에 자주 드나들 었고, 절 뒤쪽 밀림에 아지트를 만들어 주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벌이 강화된 이후 토벌대가 절 주변에 주둔하게 되면서 관음사는 끝내 이들 토벌대에 의해 전 소되는 운명에 처해진다. 소위 ‘관음사 전투’로 알려진 교전은, 관음사에 주둔하고 있던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전투와 피난입산한 주민들을 토벌대가 학살한 사건 두 가지 모두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주한미육군사령부 정보일지(G-2 보고서, 1949. 4. 1.)는 1948 년 12월 15일 경비대가 관음사 인근에서 8명의 무장대를 사살했고, 1949년 5월 에는 5명을 사살, 20명을 생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증언에 따르면, 정보 일지에 나타난 관음사 전투 당시 사살자와 생포자는 무장대원만을 의미하지는 않 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토벌대도 적지 않은 인명피해를 보았고, 피난입산했던 주민들도 학살된 이가 적지 않았다. 또한 관음사 승려들도 많은 고충을 겪었다. 9 연대 출신 한 증언자는, “토벌작전 중 관음사에 들이닥친 지휘관이 관음사 승려를 관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