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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원래 이곳 관음사 일대는 4·3 발발 당시부터 무장대 활동의 길목으로 한때 무장대 의 본거지가 있었던 어승생 진지와도 가까웠다.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전투도 잦 았다. 1948년 12월 15일, 이곳에서는 관음사전투라 불리는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1949년 2월 12일, 토벌대는 관음사를 모두 불태웠다. 다. 현황 관음사 경내 5만여 평의 밀림지대에 중대와 소대급 숙영지 27곳이 당시의 흔적 을 잘 간직한 채 남아 있다. 규모가 큰 중대급 숙영지(가로 세로 각 25m 정도)와 작은 소대급 숙영지, 3~4명이 잠복할 수 있는 초소가 여러 군데 남아 있다. 관음 사 뒷산인 아미봉(해발 650m) 정상에도 초소가 비교적 잘 보존돼 남아 있다. 각 숙영지나 초소는 돌을 이용해 둥그렇게 쌓거나 직사각형 모양으로 쌓았다. 관음 사는 입구의 초소를 정비해 복원하는 등 유적 관리에 힘쓰고 있다. 관음사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초소 유적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온다. 대웅전 뒤쪽 숲길에는 예전 관음사 등산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당시 숙영지와 초소들이 나타나고, 더 올라가 아미봉 정상에 이르면 작은 숙 영지와 초소를 만나게 된다. ② 월두 경찰파견소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월두 2길 45-1 (아라2동 1434-1번지) 나. 개요 아라리 주민들은 1949년 5월 아라1구 인다마을에 성을 쌓아 집단생활을 시작 했다. 아라2구 걸머리와 월두, 간드락 주민들은 그해 12월 월두마을을 중심으로 간드락까지 포함하는 2차 성을 쌓고 집단생활에 들어갔다. 걸머리 주민들은 1년 정도 더 월두마을에서 움막생활을 한 후에야 고향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2차 집단생활 당시 월두공회당이 있던 자리에는 경찰이 상주하면서 마을을 경비했던 파견소가 있었다. 이 월두파견소에는 5~7명의 경찰이 번갈아 주둔했고 마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