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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 3.10 학생독립만세운동의 배경
면천은 서해안권역 오늘날 당진지역의 교통과 행정, 군사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제에 의해 통폐합 되기 전 22개 면을 관할하던 면천군은 1914년 일제에 의해 당진군과 통폐합되면서 면천면으로 명칭하게 되었다. 면천공립보통학교는 사립 면양학교의 학생을 받아들이며 옛 면천군의 객사를 교사로 사용해 1911년 개교하였다. 고종의 인산으로 인해 해상 교통과 결합한 육상교통이 편리했던 면천 사람들은 참례를 위해 서울에 올라갔고, 서울에서 개최된 3.1운동을 본 이들은 지역에 내려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아울러 당시 지역사회에서 면천교회의 활발한 활동을 주목할 수 있다.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만 목사, 원용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원세화 전도사 등 개혁적 인물이 학생들에게 미친 영향과 함께 기독교의 근대 정신 역시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참여와 의지를 불어 넣는데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