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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5월31일 토요일 2 (제221호) 기 획 태고의신비화석속의카페에서차 한잔의여유를븣‘규화원’숲카페 오픈 진귀한화석이자리를잡아가고있어요 주상절리600여톤,나무화석과과일화석,동물들의흔적화석등각종화석이1만여점, 정원석,수석등 인도네시아,홍콩,필리핀등세계곳곳을두루다니며,대형컨테이너300대분량의진귀 한화석이자리 를 잡아가고 있어요븣. 9월말 오픈 예정 (무료관람가능) 카페오픈븣매월둘째주일요일10시,14시양·한방의 료봉사 화석에서나오는기(氣)체험 화석과 차 한 잔 의 여유를진귀한화석들 전북특별자치도남원시주천면산업로2768 ※문의010-9203-5803 ‘소북동일회’ 소속문중에서 기증한 자료 를 중심으로 소북 문중의 소개, 문인 집단 특징 등 420년 역사를 지닌 문중모임에 대 한 학술적 가치 조명 및 기증 예우 등을 위 한 2025년 국립중앙도서관·소북동일회 공 동학술대회가지난22일오후1시부터5시3 0분까지 국립중앙도서관(디지털도서관 3 층대회의실)에서있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밀성(밀양)박씨 충헌 공 후 비천공 종중의 박형원 현종(현 소북 동일회 회장)이 2019년부터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를 3차에 걸쳐 27종 137책(점)을 기증하면서부터 국립중앙 도서관과의인연을맺고이후소속종중에서12차에걸쳐172종40 7책(점)을기증하기에이르러기증활성화의계기가되었고,기증 된 고문서를 통해 ‘소북’ 관료를 비롯한 문인들의 재조명하게 된 것이다. 이에 김희섭 국립중앙도서관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립중앙도서 관은 그동안 개인과 문중 등의 기관으로 다양한 고문헌을 기증받 아국가문헌을 확충하는데 일조하고있다고말하고 두기관이 공 동으로 힘을 모아 이렇게 학술대회 행사를 개최함으로서 문중자 료연구에중요한계기가될것으로보인다고말했다. 박형원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소북’에서 활동해오신 선조님들의 새로운 자료를 더욱 발굴하여 학술적 가치를 점유할 수있는시간으로 발전할수 있도록 기대해본다고 말하고 주제발 표자와 참가자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축사에 갈음했 다.이날학술대회는그동안학계의뒤안길에숨겨져있던한국정 치사의 당파와 관련한 내용을 사회문화적 시각에 재조명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된 가운데 먼저 이광종 소북동일회 명예회장은 기조 강연에서‘소북동일회역사’를소상히소개했다. 주제발표에서는 제1부 ‘북보’ 연구 조선후기 특수보인 당파보 연구의 일환으로(김영진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북보 창녕성 씨가본과여용주(창녕성씨양혜공태정종중대표성세진)’,제2부 ‘소북 문인 집단의 지식공간 양상과 그 의미(김묘정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융복합연구소 연구교수)’, ‘부재 염경수 사론 산문 연구 (단국대학교 동양과학원 김종하 연구원)’, ‘소북동일회 기증현황 및주요자료소개(국립중앙도서관고문헌과학예연구사)’순으로 발표하고이에대한토론과질문이이어졌다. 소북 후예들의 모임인 ‘소북동일회’는 전양부원군 류영경을 영 수로 선조 말년에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였던 인사들의 가문인 28 성(姓)69가(家)후예들의모임으로지금으로부터426년 전인159 9년(선조32년)에비롯되었다. 1608년광해군(光海君)의왕위즉위로득세한대북에의해소북 영수영의정류영경이사사(賜死)되고대부분소북인사는조정에 서물러나게되었고,1623년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대북은완전 히 몰락하고 소북은 다시 살아났으나 집권한 서인(西人)과 남인 (人)의틈바구니속에서면면히그명맥을이어왔다.이과정에붕 당(朋黨)의 당원명단이라 할 수 있는 ‘북보’가 만들어져 소북인사 의 선조(先祖)와 자손까지 기록하여 전해지고, 소북인의 정신인 팔약조(八約條)가 효종 8년(1657) 9月 정동(貞洞) 배상일(裵尙 一)사과(司果)댁에 모여 만들어 진다.확정한 소북인(小北人)의 강령(綱領)인팔약조(八約條)는다음과같다. ①입조사군동심(立朝事君同心)(첫째,벼슬하면한마음으로임 금을섬긴다.)②노인잠거교손(老人潛居敎孫)(둘째,노인은물러 나 자손을 가르친다.) ③소년폐문독서(讀書) (셋째, 소년은 문닫 고공부에열중한다.)④위재불매전토(爲宰不買田土)(넷째,벼슬 하면 땅을 사지 않는다.)⑤가취불계영고(嫁娶不計榮枯)(다섯째, 혼인은 상대의형편을가리지 않는다.)⑥사거물언공사(私居勿言 公事)(여섯째,사사로이공적인말을하지않는다.)⑦거불이안국 방(居不安國坊) (일곱째, 호화스런 곳으로 이사하지 않는다.) ⑦ 향불하충청도(鄕不下忠淸道) (여덟째, 충청도 남쪽으로 낙향하 지않는다.) 어느 정파이든지 정치적 실권이 상실되면 사라지게 마련이나 소북인의 후예들은 선조들의 유업과 유지를 이어 시문 형태의 모 임인 몽오정시회, 청풍계별서, 수명정시회나 현정승집도, 풍남회 첩,경오유연록 등을 통해 선조들의 유덕을 계승하기 위하여 팔약 조를 제정,행동강령으로 삼고 혈연적 교류 등으로 선조대부터 내 려오는남다른결속의식과척분관계를바탕으로426년동안동심 동덕자(同心同德)라하여모임을계속하여왔으며이모임의역할 과활동은지금에도그후손들이동심동덕을지표로 한모임을 계 속하여 귀감이 되고 있고 선조들의 유지와 유업을 이어가는 교량 역할을하고있다.팔약조는선비정신이오롯이깃들어있다할수 있다.그리고별서의공간인수명정을지어시문을논하는등지식 공간으로향유(享有)하고있어발표를인용해본다. [水明亭의내재적의미와가계계승] 이 절에서는 水明亭을 중심으로 한 詩를 살펴보고자하는데,수 명정은소북 가문이 대대로 운영하였기에 일종의공간 권력을행 사한곳이라고할수있다.또한가치관이나신념을보여주는공간 으로 활용하였기에, 이들이 자발적으로 은거하고자 한 사실을 알 수있다.이에직접적으로시문을통해은거의한방편으로수명정 이라는공간을택해정치적부침에휘말리지않고자한면모를확 인하고자한다. 『수명정은높은봉우리의기슭을베고여러구릉의꼭대기를차 지하여그발아래에모이고한쌍의섬이앞에놓여있으며,목멱(木 覓),백악(白嶽),부아(負兒),마안(馬鞍),지주(砥柱),잠암(蠶巖),그리고 계양(桂陽)과시흥(始興)의산들이좌우에늘어서있다.배들이모이 고저잣거리가도회지를이루어,민가들이즐비하게늘어선모습이 마치물고기비늘이나벌집과도같으니,이모든것들이내가아침 저녁으로 매일 보는 볼거리가 된다.거기다가 동우가 닿고 서까래 끝이이어진 주변의 여러정자 들이모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돌 아볼수있는범위안에있으니,수명정이여러정자가운데가장으 뜸이라는 데에 마땅히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승경을 자랑하는 한강 변에서 삼포가 그 아름다움을 전유하고,명성을 날리는 여러 정자 가운데 수명이 가장 으뜸이다.그렇다면 수명정의 주인이 되 는사람은 반드시하늘로부터얻은것이온전해서맑은 복을넉넉 히누리고지극한즐거움을향유할것이니,당세사람이얻어서오 래도록전유할수있는이가자주있지않을것이다. (李敏求,동주집권3수명정기)』 논의에 앞서 水明亭의 위치와 뛰어난 경관을 확인하고자 하는 데, 수명정은 三浦에 해당하는 마포(麻浦)에 위치한 것으로 한강 변의승경을조망할수있는곳으로알려져있다.위인용문인이민 구(李敏求)의 븮水明亭記븯를 통해 수명정이 三江에 해당하는 漢江, 龍山江,西江이모이는곳에있어모든경관을조망할수있는경관 을자랑했으며,여타정자와비교해도손색이없음을알수있다. 또한 수명정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소북 문인 외에도 여러 문인이 애호함으로써 창작 공간으로 활용 되었음을볼수있다.李敏求(1589~1670)는븮수명정연구체,水明亭 聯句體븯시에서 “높은 언덕에 자리 잡아, 광활하게 먼 강물 내려다 보네.멀어서 세 번 쉬어야 오를 수 있고,높아서 천지 사방 바라볼 수있네”라고읊어오르기는어렵지만뛰어난조망권을지니고있 음을 언급한 바 있다.또한 븮수명이거,水明移居븯작품에서 “늘그막 에머문곳에도리어이런경치있으니,세상어디가봉영이란말인 가”)라고읊어수명정을신선세계에견준바있다. 『처음 1616년 萬曆병진년에 吏部侍郞 泌川朴公(휘 이서)이 비 로소이정자를지었고,그의아들兵部左侍郞大瓠公(휘노)이담 과 지붕을 손질하였고,손자 奉化君(휘 수현)에 이르러 현감 자리 를 그만두고 돌아왔다.지금 三代 39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건물은 날마다 더욱 튼튼해지고 섬돌과 뜰은 날마다 더욱 잘 가꾸어졌으 며, 터는 기울지 않고 世業은 무너지지 않았으니, 어찌 어려운 일 이아니겠는가.』 (이민구동주집권3수명정기) 다음으로 수명정의 가계 전승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는데, 小北 문인인 密陽朴氏 집안이 대대로 이 공간을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 다. 이에 수명은 小學 중 한 명인 비천공 박이서(朴 총 ,1561~16 21)가 창건한 이래로 대호공 박노(1584~1643)와 小北八文章인 초 정공 朴守玄(1605~1674)에게전해졌음을알수있다.이렇게본다 면,수명정은존재자체로소북문인의정치적부침과영향관계를 맺고있다는점에서또다른의미를견인해낼것으로판단된다.이 에 대대로수명정이어떤 의미맥락을지니고 있는지확인하는작 업을진행하고자한다. 『萬曆1620년겨울泌川朴公이명나라광종이승하하게됨에따 라 진위사(陳慰使)의 사명을 지니고 연경으로 떠날 예정이었는데, 하루 전에 내가 향리에서 入京하여 박이서를 찾아뵈었더니,그가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윽고 밤이 되자 나에게 이르기 를,“내가그대의어떤글을읽어보았는데,나의뜻과완전히합치 되는것을느꼈다.그래서지금그대에게나름대로부탁을하려한 다.내가마포위에새로정자하나를지었는데,杜甫의시에나오는 뜻을 취하여 수명(水明)이란 편액을 내걸고는 아침저녁으로 그곳 에서노닐고있다.지금비록먼길을떠나게되었지만,다시돌아와 서는 곧바로벼슬을 그만두고 여기에서 노년을 보내려고 하니,그 대가나를위해기문을지어주었으면한다.”라고하였다. (택당이식,택당선생별집권7)』 위 인용문인 <吏曹參判泌川朴公墓碑銘>을 통해 수명정의 외적 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데,박이서는 마포 위에 정자를 짓고,두 보의븮月븯시가운데뷺새벽에산이달을토하니,밤이다해강물이누 각에 환하네(四更山吐月,殘夜水明樓.)”라는 구절에서 뜻을 얻어 수명정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이서가 수명정에서 은거하며한가로운노년을보내기를희망했음을알수있다. 『柳希奮·朴承宗(규정공후)두집안과박이서는본래평소에친 하게 지내 오던 사이였다.그런데 두 집안이 척리(戚里)로 은총을 받게 되면서부터 이이첨과 三者同盟을 맺었는데,박이서는 옛날 의우호관계를완전히버리지않아흉악한주장을배격할때도상 당히조력하곤하였다.그러다가혼란스러운상황이극에달함에 미쳐두사람모두바로잡아구원해낼수가없게되자박이서가대 단히가슴아프게생각하면서,늘부자간에서로몸을깨끗이하여 한가한곳에물러나살자고약속했던것이다.그리고그뒤로는다 시그사이에더러운자취를남기지않으려고하였으니,이것이바 로水明亭에담긴은미한뜻이다.아,생각하면슬픈일이다.』(택당 이식) 다음으로 수명정에 담긴 내적인 의미를 검토해보고자 하는데, 수명정에는 세상에 더러운 자취를 남기지 않고 물러나 살고자 하 는의지가담겨있다고할수있다.즉은거의한방편으로수명정이 라는공간을택해정치적부침에휘말리지않고자했음을알수있 다.또한정권의혼란함이지속될시그곳에서벗어나깨끗함을유 지하고자했던것으로보인다.또한이들이수명정에살게된자세 한경위를확인할수있는데,朴 총 서(1561~1621)는文化柳氏인柳 希奮(1564~1623), 密陽朴氏 규정공 후예인 朴承宗(1562~1623)과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당시 누이가 광해군의 妃였던 유 희분을 비롯해 아들인 박자흥의 자녀가 광해군의 世子妃였던 박 승종이 이이첨(1560~1623)과 함께 三者同盟을 맺고 폐모론을 일 으켜 인목대비를 西宮에 유폐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이후 仁祖反正이 일어나면서유희분은 참형을 당하고 박승종이 아들과 함께자결하자,박이서는아들박노와함께수명정을짓고그곳에 서거처했음을알수있다. 『잠탈진애고(暫脫塵埃苦,잠시 괴로운 진세를 벗어나)/래등수 상루(來登水上樓,물 위의 누대에 오르네)/풍연삼월후(風煙三月 後,삼월이후풍광으로)/화죽소원유(花竹小園幽,작은정원꽃과 나무 그윽하네)/ 유객승선지(有客乘船至, 객이 배를 타고 오니)/ 휴호병촉유(携壺秉燭遊, 술병 들고 촛불 밝히며 노니네)/ 기장일 일취(期將一日醉,하루종일취해서)/요파백년수(要破百年愁,백 년의수심깨뜨리려하네)/수밀장서조(樹密藏栖鳥,나무 숲 빽빽 하니 새가 깃들고)/ 사명견숙구(沙明見宿鷗, 모래밭 깨끗하니 잠 든 갈매기 보이네) 조성주반석(潮聲洲畔石, 모래톱 바위에 조수 물소리들리고)/인어중월주(人語中月舟,달빛 어린배에사람말 소리들리네)/로습문방두(露濕聞芳杜,이슬젖은풀에서향기퍼 지고)/정허의로추(庭虛依老楸, 뜰이텅비어늙은가래나무에기 대네)/환정경락엽(宦情輕落葉,벼슬할 생각은 낙엽처럼 가볍고) /기적등부구(羈跡等浮 ;,나그네발자취는물거품과같네)해후 개청안(邂逅皆靑眼, 서로 만나면 모두가 반가운데), 쇠지괴백두 (衰遲愧白頭,노쇠하여머리 센 것 부끄럽네)/ 명조각산거(明朝各 散去, 내일 아침이면 각각 흩어져 떠나갈 테지만) 응억차소류(應 憶此宵留,이날밤에머문것기억하겠지 (박노대호공유고〈水明亭夜陰呼韻〉)』 朴노(1584~1643)가 수명정에서 지은 작품을 살펴보면, 속세에 서벗어나수명정에서풍경을 즐기고있는 동시에 삼월밤에 술을 마시며 느낀 흥취를 시로 형상화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5~16구 를통해수명정의 내재적의미가실제로 구현되었음을 볼수 있으 며,벼슬에 대한 마음이 낙엽처럼가볍다는 부분에서 박노가 벼슬 할 뜻을 버렸음을 유추할 수 있다.이 작품 외에도 븮수명정증제우, 水明亭贈諸友븯라는 작품이 남아있으므로, 박노가 수명정을 작시 공간으로활용했음을알수있다. 『(1) 작몽창강활(昨夢滄江 在 ;, 어젯밤 꿈속의 푸른 강물 광활한 데)/만래추색심(晩來秋色深,저물녘 되니가을빛 깊어지네)/위정 린석면(危亭隣石面, 바위 옆에 있는 높이 솟은 정자)/ 고도진파심 (孤島鎭波心,물결속의외로운섬)홍란정화영(紅亂庭花影,뜰에붉 은꽃그림자어지럽고)/청수안류음(靑垂岸柳陰,언덕에는푸른버 들그림자드리웠네)/진일망귀거(盡日忘歸去,종일토록돌아갈줄 도잊었으니)/ 도도흥부금(滔滔興不禁,넘실거리는흥을그치기어 렵구나(박수현초정선생水明亭口號) (2) 금일상봉호상정(今日相逢湖上亭, 오늘 강가 정자에서 서로 만났는데)/각차인사역조령(却嗟人事易凋零,문득서글프구나,인 간세상에서쉽게쇠하는것)/여금불악내장로(如今不樂奈將老,지 금을즐기지않고늙어만가면어찌하겠나)/잔조저홍모수청(殘照 低紅暮峀靑,서양무렵노을푸른산에붉게지는구나) 朴守玄,『草亭先生遺稿』,〈次鄭白也題水明亭韻〉』 다음으로 (1)에 해당하는 박수현(1605~1674)의 븮수명정구호(水 明亭口號)븯작품을살펴보면,이시에도수명정에서바라본아름다 운 풍경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가을 짙은 밤 수명정에 서의 즉 흥적인흥취를시로형상화한작품이다. 작품 (2)는 박수현이 백야 정석(1619~1677)의 시에 차운한 작품 이다.박수현과정석이지식공간안에서교유를나눴음을 알 수 있 는데, 정석은 해주 정씨로 小北 문인 중 한 명이라는 특징을 지닌 다. 시 내용을 통해 이들이 수명정에서 만나 세월을 흐름을 안타까 워하며지금이순간을즐기려한사실을확인할수있다. 2025년국립도서관·소북동일회공동학술대 회성료 기증자료중심새로운자료발굴븡학술적가치조명븣‘소북’조선중기북인에서갈라진 당파의하나 박형원 회장이 축사를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