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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1947년 3·1절 기념행사 때 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6명이 희생되면서 시작됐다. 도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과 극우단체인 서북청년회의 탄압이 이어졌고 급 기야 3명이 고문치사 당했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경찰지서를 습격하며 봉기했는데, 그 후 1954년 한라산이 개방 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사건이 전개됐다. 이 기간에 인구의 10분의 1인 약 3만 명이 희생되었다. 중문면 12개 마을도 모두 큰 희생을 치렀다. 무장대는 중문리 소재 경찰지서를 습격하며 면사무소를 불태웠고, 식량 탈취 과정에서 일부 마을 주민을 살해하거 나 집을 태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군경토벌대에 의해 희생됐다. 특히 갈취와 폭행을 일삼던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경찰과 군인으로 변신해 온갖 악행을 자행했다. 1948년 가을 소개령과 계엄령이 선포돼 중산간 마을을 모두 불태우고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초토화작전이 전개됐다. 해변마을도 예외가 아니 었다. 토벌대는 걸핏하면 무장대 지원 혐의를 씌워 법적 절차도 없이 주민들을 총 살했다. 두려움에 떨던 청년들이 도망치면 남은 가족들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남 녀노소 무차별 학살했다. 유족들은 연좌제로 장래가 막히고 온갖 치욕을 당하면 서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50여 년간 몸부림쳤다. 그 결과 2000년 4·3특 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 10월 15일 잔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다. 노무현 대 통령은 보고서가 채택되자마자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중문면 출신 786위 영령들이시여! 저희들을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얼마나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셨습니 까. 누가 저 어린 것들을 보살펴줄까 걱정이 되어 얼마나 힘들게 눈을 감으셨습니 까. 한이 맺혀 얼마나 오래도록 구천을 헤매셨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 걱정일랑 다 내려놓으소서. 젖먹이였거나 10살 안팎의 어린이였던 저희들이 어느덧 자식은 물 론 손자·손녀까지 거느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당신님의 대를 잇는 후손들입니다. 저희들은 고난과 박해에 굴하지 않고 고사리 같이 여린 손으로 잿 더미가 된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또한 분한 마음을 복수로 풀어내지 않 았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아껴주면서 아름다운 제주공동체를 복원해냈습니다. 4·3영령들이시여! 억울하게 희생되신 당신님을 위령하고자 이곳 천제연공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