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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당시18세) 화 장 1972년 출생 1988년 대구 경화여고 입학 1989년 전교조결성시 대의원으로 교사징계반대활동 주도 1990년 경화여고 학생회 총무부장 1990년 6월 5일 밤 9~11시경 영남대 인문관 옥상에서 투신, 운명 |39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학창시절 내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근면, 성실하고 쾌활하며 책임 감이 강한 학생이었다. 2학년 때 담임교사에 의하면“무척 책임감이 강하고, 남 의 고민을 같이 아파해 주며, 자기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미가 풍부하고 여 유가 있는 넉넉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89년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탄압시 대구 경화여자고등학교에서는 동지의 담임교사를 포함해서 모두 6명의 교사가 해직 당하였고 동지는 학생회 대의원으 로 전교조 가입교사 징계반대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동지는 징계 반대 시위를 여러 차례 주도하고 이것으로 인해‘빨갱이, 운동권’이라는 문 제 학생으로 찍히게 되어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하지만 많은 고통에 대한 상담 역을 하면서도 자신의 고민은 내색하지 않았다. ’90년 동지는 학생회 총무부장을 역임하면서 학생회장과 함께 학생회 활동을 이끌게 되는데 당시 대구의 다른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생회 활동이 활발했 던 경화여고 학생회는 학교측으로부터 일상적인 감시와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러 한 상황에서 ’90년 6월 5일 동지는 친구와 함께 모 교사로부터 건방지다는 이유 로 폭행과 그간 활동에 대한 심한 폭언을 당하게 된다. 동지는 폭행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학교로 돌아 와 학생회장에게 쪽지편지를 전해주고, “전교조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찍힌 학생 은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 죽음이 왜곡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 용의 유서를 남긴 후 학교를 떠났다. 동지는 해직된 담임교사에게도“전교조를 지지했던 것이 죄가 된다면 법정에서 떳떳이 죄 값을 받고 싶습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6월 5일 밤 9시~11시 경 영남대 인문관 4층 옥상에서 투신, 운명하였다. 동지의 죽음을 두고 학교측은‘성적비관자살’, ‘정신이상자의 자살’등으로 왜곡 하였지만 동지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논리와 도덕성이 결여된 군사독 재 정권의 전교조 및 학생자치활동 탄압이 낳은 살인이며, ‘전교조 지지, 참교육 실현’‘학생자치활동보장’을 열망하는 자주적인 학생활동을 탄압하는 정권에 대 한 항거였다. 끝내살리라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