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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3) 학살터 ① 박성내 가. 소재지 제주시 아라1동 나. 개요 1948년 12월 21일, 조천면 관내 청년 100여 명이 집단학살 당한 곳이다. 학살 일주일 전쯤 함덕 주둔 군인들은 와흘리, 대흘리 등 조천면 산간지역에서 피난 온 주민은 물론 함덕, 신흥, 조천, 신촌리에 거주하는 해안마을 주민들에게 “산에 좁쌀 한 되라도 올린 사람은 자수하라! 그러면 양민증을 발급할 것이고, 나 중에 발각되면 총살할 것이다!”고 선전했다. 주민들은 너도 나도 자수대열에 합류 했다. 조천면 일대는 무장대의 세력이 비교적 강해 자의든 타의든 조금의 협조를 안 한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토벌대는 함덕 대대본부로 자수자들이 집결하자, “토벌을 3일 정도 갔다 오면 양민으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자수자들을 트럭 3대에 분승시켜 제주농업학 교로 향했다. 당시 이 트럭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트럭 짐칸 이 꽉 차 더 이상 차에 오르려 해도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 후 이들의 운명 은 정반대로 갈렸다. 웃으며 농업학교에 실려갔던 자수자들은 일주일 정도 감금 됐다가 1948년 12월 21일, 박성내로 끌려가 모두 학살됐다. 이날 학살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신촌리 출신 고 김태준은 생전에 “군인들 이 트럭에서 소지품을 다 꺼내라 하더니 값나가는 것은 다 빼앗았어. 그리고 담배 하나를 주며, ‘이제 너희들은 죽을 것이다. 곱게 죽어달라’ 했어. 군인들이 철사줄 로 사람들을 엮어서 끌고 갔지. 난 어깨에 총을 맞았지만 숨이 떨어지진 않았어. 군인들은 총살 후 휘발유를 뿌려 사체를 불 태웠어. 난 어둠속에서 철사줄을 풀고 불붙이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지. 며칠간을 걸어서 고향에 도착했어”라고 증언 했다. 이날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김태준과 동향인 이만식 노인도 있 었다. 그도 총에 맞았지만 현장을 빠져나온 후 선흘에서 만난 한 주민의 도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