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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제주읍 신아파트 북쪽 담을 따라 공터에 약 20m 정도 복원해 4·3유적임을 알리는 표석 을 세워놓았다. 당시의 원형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4·3유적지 인다마을 4·3성 이곳은 제주4·3사건 당시 도남 등지에 소개령으로 내려갔던 아라리 주민들이 1949년 5월경, 마을 재건을 위해 돌아온 후 산담과 밭담을 등짐으로 날라 성을 쌓은 눈물 가득한 고난의 현장이다. 주민들은 알인다의 아라국민학교를 중심으로 성을 쌓아 집단 거주했는데, 축성 은 읍내에 피난 내려가 살던 주민들에 의해 쌓아졌다. 성의 넓이는 동서 150m, 남북 200m의 긴 직사각형의 형태였으며 높이는 4m, 남문과 북문 2곳의 출입문 을 만들었다. 거주공간은 임시로 만든 움막 형태의 함바집을 다닥다닥 붙여 아라 리 주민들이 모두 모여서 살았다. 여기에 모여 살던 아라2구의 걸머리, 원두왓, 간 드락 주민들은 1949년 12월 원두왓을 중심으로 다시 축성을 하여 돌아갔다. 1948년 11월, 마을이 불타고 소개령이 내려지자 아리리 주민들은 연고를 찾아 간드락 마을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도남, 광양 일대로 옮겨 고난의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마을 인근의 야산에서 피신생활을 이어가다 토벌대에 의해 희 생되기도 했다. 현재 인다마을 4·3성은 원신아파트 북쪽 담을 따라 약 20m정도 남아 있으나, 아라동 택지개발지구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더욱 안타깝다. 다시는 이 땅에 4·3사건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 표석을 세운다. 2014년 12월 일 제주시 아라동장 아라동주민자치위원회 (자문: 제주4·3평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