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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중문면 는 없이 고생만 했었다고 증언했다. “제주도 4·3사건을 끝내려면 남은 폭도들을 완멸해야 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아 무래도 경찰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설치된 것이 100사령부였다. 100사령부에는 101부대, 102부대, 103부대, 105부대가 있었다. 나는 당시 103부대 장으로 임명되어 산에 가서 생활을 하게 됐다. 진압 생활을. 103부대는 중문 위 녹하지 라는 데 하고, 동쪽 교래 위쪽에 주둔지를 만들어서 양쪽에서 작전을 벌였다. 우리 토벌대의 임무는 폭도를 수색해서 붙잡는 임무, 폭도가 민간인을 해치는 것을 방어할 임무 등 여러 가지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별 성과가 없 었다. 고생만 했다. 밤잠을 못 자고 추위에 떨면서. 내가 3개 소대를 지휘했는데 겨울에 도 눈 위에 있었으니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한 식사나 모든 것이 산간에 있어 서 어려웠다. 우린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같이 행동했다. 전멸 당할 위기 도 여러 번 있었다. 잘못 작전을 해서 폭도에게 포위당할 뻔했던 경우도 있었고. 한 번 은 소대장인 경위가 토벌에 나섰다가 폭도에게 총을 맞아 쓰러졌다. 내가 제일 선두에 섰는데 폭도들이 나를 쏘지 않고 두 번째에 있는 소대장을 쏘아버린 것이었다. 딴 부대 는 폭도를 잡은 예도 있었다. 우리 부대는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건지 고생은 무지하게 하 고 별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이쪽에서 전멸 당할 그런 경우가 있었다.” 장씨는 성과가 별로 없는 100사령부의 작전이었지만 존속 의미는 있었다고 전 했다. “100사령부는 폭도들을 다 진압할 때까지 있었으니까 몇 년 간 존속했다. 100사령 부가 조직되고… 우리가 산에 들어가서 그런 고생을 무릅쓰고 폭도 진압을 완수했다. 물론 군부대도 있었지만 나중에 100사령부를 조직해서 산에서 오랫동안 산 전체를 누 비면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진압이 되었지 않았나? 100사령부를 조직해서 한라산 각 요지에다 부대를 배치해서 방어하고 수색을 한 결과 진압된 것이다. 나중에 내가 나온 직후였는데 폭도 주동자를 다 붙잡고 사태를 진압한 것은 100사령부였다고 해도 과언 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