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page
19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당시 아라리에는 간이학교가 있었으나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불태워졌다. 1구 와 2구 자연마을 중 본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던 웃인다와 10가호 미만의 작은 마 을 재공동(宰公洞)과 탯굴은 그 후 재건되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잃어버린 마 을로 변했다. 아라리의 주요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26일: 김세기(24, 남, 대한청년단원)가 무장대에 살해됨 5월 8일: 전원부(26, 남)는 무장대 습격 소식을 알리러 인다마을에 갔다 무장대에 살해됨1 5월 15일: 양경식(25, 남)은 토벌대가 마을에서 발포한 총알에 맞아 사망함 10월 14일: 김위진(28, 남)을 비롯한 4명이 토벌대에 학살됨 10월 27일: 오경수(27, 남, 제주우체국)가 경찰에 연행돼 박성내 다리 근처 에서 총살됨 1949년 1월 14일: 양숙신(71, 여) 일가족 5명과 정신옥(20, 여) 모자 2명이 토벌 대에 학살됨 1월 20일: 김을생(88, 여) 부부를 비롯한 6명이 소개령이 내려진 뒤에도 마을에 남아 있다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아라리-학살터-대 원마을 오씨 집 옛터, 참조) 현재 아라리의 4·3희생자 중 정부에서 인정한 사람은 모두 219명(남성 172명, 여성 47명)이다. 1)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에 따르면, 당시 인다마을 구장이자 선거관리위원장이었던 김영창의 부 인 현정춘이 이날 집에서 무장대에게 살해됐음. 그러나 희생자 신고는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