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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유영렬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 19 사실 안의사의 유해 발굴은 오랜 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 관장은 일본측에 안의사의 시신 매장과 관련된 기록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언젠 가 그 기록을 발굴하여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유해 발굴 작업을 착실히 추진하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히 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 관장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계획중인 중요 사 업으로 앞서 언급한 기념관 북쪽의 주차장을 ‘안중 근평화광장’으로 조성하는 것을 꼽았다. 여기에 안 중근의사와 모친, 부인, 그리고 두 동생의 유품을 넣 은 충혼탑(기념물)을 만드는 사업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안중근의사와 모친 그리고 두 동생은 독립 유공자인데 묘소가 없고, 부인의 묘소도 없어 안타 까운 실정이라고 했다. 특히 유 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평화 사상을 선양하는 강연과 집필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 습니다. 현재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해 『민족의 영웅, 세계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제목으로 하는 저 서의 발간을 준비 중입니다. 원고가 거의 완료되었 으므로 조속한 시일 내에 발간하려고 합니다”라며 새로운 저서 발간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대한 일부의 오해 유영렬 관장은 우리 국민들이 안 의사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사실이 일부 있다면서 자세히 알려주 었다. 또 안중근 의사 의거의 중요한 역사적 의의에 대해 정리하기도 했다. “많은 국민들은 영화 ‘하얼빈’에서 보여주듯이, 여 러 명의 독립군이 1909년 10월의 하얼빈의거에 참 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하얼빈의거에 여러 명의 독립군이 참여한 사실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얼빈의 거가 러시아 연해주 최재형(崔在亨, 1858~1920)의 후원을 받아 일어났다는 주장이 있지만, 안중근 의 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하얼빈 방문 소식을 들은 이후 최재형을 만난 사실도 없습니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하얼빈의거가 블라디보스톡 의 대동공보사[大東共報社] 관계자들의 후원과 지도 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 관 장은 일본 사카이[境喜明] 경시, 관동헌병대장, 구라 치[倉知鐵吉] 정무국장, 미조부치[溝淵孝雄] 검사 등 일본 조사 담당자들의 철저한 취조 결과에 따르면 하얼빈의거는 대동공보사와 관련 없이, 안중근 의사 가 단독으로 계획하고 소수의 인원을 택하여 일으켰 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관장은 대학 교수 출신의 역사학자답게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는 일제의 침략으로 절망 상태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는 장기적으로 독립운동의 기폭 제가 되었고, 쑨원[孫文]과 장제스[蔣介石] 등 중화민 국의 건국세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역 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매우 높이 평가했다. 다시 주목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 그리고 그의 ‘동 양평화론’등 숭고한 사상은 최근 더욱 주목되고 있 는듯 하다. 그러나 일본의 일부 극우 인사들은 아직 도 안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격하하고 그와 한국 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도 한다. 반대로 안중근을 존경하는 일본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중국에서는 안중근 의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