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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와 중문민청 위원장 김성추를 연행하자 3월 17일 주민 1천여 명이 중문향사에서 모여 면민대회를 갖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중문지서로 몰려갔다. 이에 중문 지서에서는 경찰지휘관이 여러 차례 해산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발포했다. 결국 이 발포로 강상준 등 지역주민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7 제주신보는 “이 사 건으로 상예 마을 강상준, 진철주, 고재호, 고승평, 오승준, 변일봉, 강영범 등 7명 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이 가운데 2명이 위독상태” 8 라고 보도하고 있다. 중문지서는 4·3이 발발하자 중문면 관내 토벌대의 총본부 역할을 했다. 타지방 에서 온 응원경찰대와 서청, 군인들이 지서를 중심으로 마을 이곳저곳에 주둔해 토벌에 나섰다. 이런 와중인 1948년 11월 5일, 무장대가 중문리를 습격했다. 이 날, 치열한 교전을 치르고도 지서는 다행히 불타지 않았지만, 중문면사무소를 비 롯해 지서 주변의 민가 40여 채가 전소됐다. 또한 당시 총격전으로 중문지서에 근무하던 경찰관 2명이 순직했다. 9 6) 그 후 양경한 지서장은 검거돼 목포형무소에서 사망했고, 강수헌 순경은 입산해 행방불명됐다. 7)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 130쪽. 8) 『제주신보』, 1947. 3. 24. 부상자 중 강상준은 후유증으로 얼마없어 사망했다. 9) 당시 상황은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4권, 227~233쪽 중문리편 참고. 중문지서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