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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바위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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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천주교 전파 공주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신해박해(1791) 이전으로 추정된다. 1791년 공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김명주와 홍철·인철 부자가 이존창 루도비코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바 있다. 한편 1792년 1월 관찰사 박종악의 『수기』에 공주 신상면 규동(현 공주시 유구읍)에서 이덕침 등 4형제가 사학을 한다는 기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황새바위 황새바위는 순교자들의 피로 축성된 거룩한 땅이다. 공주는 기록상으로 가장 많은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순교 현장이 황새바위이다. '황새바위'라는 이름은 이곳에 황새들이 많이 깃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사학죄인들의 목에 채워진 항쇄 때문에 '항쇄바위'라 불리던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당시 공주는 충청감영이 있어서 사학죄인으로 잡혀온 신자들이 많았다. 황새바위 아래 제민천변 백사장에서는 잡혀온 교우들이 참수로 처형되기도 하였다. 달레(Dallet.C.C)의 『한국천주교회사』는 '황새바위에서 공개 처형이 있는 날은 처형장이 내려다보이는 공산성에서 흰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처형장을 바라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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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순교자가 많은 이유 조선시대 공주에는 충청감영이 있었다. 1602년에 설치된 감영에는 관찰사(감사)가 주재하였다. 관찰사는 충청도 내 행정·군사 지휘 통제의 권한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충청도 5개 진영 가운데 하나인 우영(右營)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영장은 군사와 치안을 동시에 담당하였다. 때문에 관찰사와 진영장은 사학죄인으로 낙인찍힌 교우들을 체포하고 신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지방관에게 내려진 선참후계령(先斬後啓令)은 지방의 신자들을 자의적으로 처결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충청도는 천주교 신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선교사들의 사목 거점도 충청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도의 수부(首府)인 공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다.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 '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료들을 통하여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만도 337위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