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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중문면 지원해서 갑니다. 선생님 몸조심 하십시오,’ 그렇게 떠났는데… 그분들은 어디서, 어떻 게 죽었는지 모릅니다.” 다. 현황 당시 예비검속자를 수용했던 창고 건물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현재 3층짜리 상 가건물이 들어서 있다. 옛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6) 주둔지 ① 중문지서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천제연로 165 (중문동 2113-2번지) 현 중문파출소 나. 개요 중문지서는 일제시기인 1912년 5월 17일, 현재 우체국 자리에 처음 설치됐다. 그 후 1916년 8월 제주경찰서 중문경찰관 주재소로 개칭되고 1933년께는 현재 의 자리로 면사무소와 바꿔 이전했으며, 1981년 7월 1일 서귀포시 승격으로 지 서가 파출소(중문동과 예래동을 관할)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렀다. 중문지서는 해방 후 몇 차례의 큰 사건을 맞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1947년 3·10 총파업 당시 경찰이 주민들에게 발포해 부상시킨 사건과 4·3 발발 후 중문 지서가 토벌대의 근거지 역할을 하면서 많은 주민들이 지서의 응원경찰에 희생된 사건들이다. 중문에서 벌어진 1947년 3·1절 시위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격렬했다. 이런 마 을 분위기 때문인지 당시 지서주임이었던 양경한 경사를 비롯해 한태화, 강석조, 강경진, 강수헌, 송공삼 순경 6명은 전도적으로 파업선풍이 일어나자 3월 13일 직원회의를 갖고 파업에 동참하기로 결의해 사직원을 제출한 후 직장을 떠나버렸 다. 6 그러나 그 직후 교체해 온 응원경찰이 마을 유지인 중문중학원 원장 이승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