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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웅 (당시24세) 1963년 10월 17일 출생 1982년 3월 서울대 무역학과에 입학 서울대 학술동아리‘대학문화연구회’등에 가입 활동 1983년 11월 3일 학생의 날 학내 시위에 참여한 사실로 관악경찰서에 연행 1985년 3월 28일 부평역 가두시위로 구류 1985년 4월 10일 노동운동 탄압규탄 대회로 구류 1985년 6월 29일 구로공단 내 대우어패럴 근로자들의 농성에 참여한 사실로 구속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김해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가 1986년 7월 4일 만기 출소 1987년 9월 복권되어 같은 해 특례 입학하였고, 국제경제학과 4학년 2학기 수료 1988년 2월 대학 졸업 1988년 5월 26일 평소와 같이 외출하였다가 행방불명 됨 |36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2년 3월 서울대 무역학과에 입학하여, 서울대 학술동아리‘대학문화 연구회’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83년 10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유인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같은 해 11월 3일 학생의 날 학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 유로 관악경찰서에 연행되었다. 또한 ’85년 3월 28일 부평역 가두시위로 구류 7 일을 살았고, ’85년 4월 10일 노동운동 탄압규탄 대회로 구류 3일 처분을 받았다. ’85년 6월 29일 구로공단 내 대우어패럴 근로자들의 농성에 참여하였다가 구 속되어‘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김해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가 ’86년 7월 4일 만기 출소하였다. 출소한 동지는 ’87년 복권되어 같은 해 9월 특례 입학하였고, 국제경제학과 4 학년 2학기를 마치고 ’88년 2월 대학을 졸업하였다. 또한 동지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소재 새암교회에서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로 활동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87년 10월 목사후보생 시험에 합격하고 ’88년 1월 총신대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였다. 새암교회 목사는“ ’88년 5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이전에 동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만나기로 하였다가 갑작스런 교인 심방으로 인하여 약속을 다시 하고 점심경에 교회에서 만나 식사나 하자고 하였으나,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 았다”고 말하였다. 북파공작 특수부대원이라는 박모씨는“ ’86년 여름경 학생운동을 하였던 안치 웅이라는 대학생을 납치∙살해한 후 저수지에 수장했다”고 서울방송(SBS)에 제 보하였으나, 박모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여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도 거의 진상규명이 되지 못한 상태이며 가족들은 아직도 애타게 동지를 찾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끝내살리라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