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page
185 중문면 당시 큰우영팟 앞집에 살았던 이치근은 “그냥 관리 차원에서 한 곳에 모아 살게 한 거예요. 색달리, 중문2구 사람들이 여기에 왔죠. 인척이 있어서 갈 곳이 있던 사람들은 안 들어갔고, 갈 곳이 없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라고 증언했다. 다. 현황 당시 수용소로 이용됐던 곳에는 오피스텔(더 프라임 시티)이 들어섰고, 주변은 상가건물들이 가득해 옛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② 예비검속자 수용소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천제연로 163 (중문동 2113-3번지) 일대 나. 개요 중문지서 왼편(서쪽)에 위치했던 소방서 창고는 토벌대가 1950년 7월, 중문 관 내 예비검속자들을 검거해 수용하는데 이용됐다. 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 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인민군에 동조할 세력’이라 하여 예비검속하기 시 작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국민보도연맹이 정확히 언제 결성되고, 맹원들이 누구였는지 자세히 밝혀진 것이 없어 불명확하나, 토벌대는 예비검속을 명분으로 제주도에서도 (보도연맹원들을 대상으로) 검거활동을 벌였다. 당시 제주도의 제2 구 경찰서(서귀포경찰서)는 관내에서 수백 명을 검거했다. 이때 제2구경찰서 관 내였던 중문지서에서도 예외 없이 예비검속이 진행됐다. 이치근은 당시 제주시에서 농업학교를 다니다가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는 고향 인 중문에 잠시 들렀다가 검속됐다. 그때 다행히 재치있게 대처해 석방되었다는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중문파출소 앞에 소방서가 있었어요. 그때 나도 거기로 잡혀가서 하룻밤 수용소 생 활을 했어요. 난 그때 농업고급중학교 5학년에 다니다가 해병 4기로 지원해둔 상태였 어요. 군에 가려고 하니 내가 자취생활하며 썼던 세간살이를 집에 갖다놓고 가야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