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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중문면 렇게 증언했다. “남편이 총살될 때는 대포리 상동 주민들이 회수리로 소개해 살던 때입니다. 남편이 중문리로 끌려가자 난 저녁밥을 준비해 찾아갔지요. 그런데 유치장에는 남편이 없었습 니다. 불안한 마음에 서성거리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습니다. 남편이 총살 당하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눈물이 쏟아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급히 현장에 가 보니 쇠줄로 목이 묶인 채 총에 맞은 36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무고합니다. 남편은 당시 경찰이던 5촌 삼촌(송두석 경사)의 권유로 경찰에 지원한 상 태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또 다른 5촌 삼촌이 입산한 것에 연루됐다고 하더군요. 그 러나 그 5촌 삼촌은 진작부터 대정골에 양자들어 남편과는 얼굴도 잘 모르던 사이였습 니다. 총살장에서의 상황은 그 자리에서 총 한 발 맞지 않고 구사일생한 이문기 씨에 의 해 알려졌습니다. 이문기 씨에 의하면 총살 직전에 일부는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쳤 고, 일부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이놈은 대한민국 만세라고 했지만 제 친척에게서 물이 들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남편을 쏘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난 ‘총살자 가족’이라 하여 갖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한 번은 생손을 몹시 앓아 보초 시간에 5분 늦었는데 서북청년단 출신 응원경찰이 총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때 허리를 다쳐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16살 동갑으로 결혼해 21살 때 남편 을 잃었습니다만 그 동안 어디에 하소연 한 번 못 해봤습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하나 의지했는데 아들도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5 그 후에도 이곳에서는 몇 차례 학살이 더 있었는데 희생자는, “1948년 12월 4 일: 상예리 – 강문범(39, 남), 오대일(25, 남), 오승태(37, 남), 임영추(25, 남), 하 예리 - 강승정(22, 남), 김석종(28, 남), 12월 17일: 색달리 – 나문옥(23, 남), 1949년 1월 18일: 색달리 – 김려식(25, 남), 김추월(20, 여)”이다. 다. 현황 도살장 옛터는 천제연 입구의 중문면 4·3희생자 위령비와 대각선 방향 캠핑장 5)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제5권, 1998, 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