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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해안마을에 소개 갔던 일부 연동 주민들은 다음 해 봄부터 도호동에 성을 쌓았 다. 그리고 성 안에 함바집을 지어 집단거주했다. 그동안 무장대의 공격도 두 차 례나 받았다. 1955년 이후 경비가 해제되자 각 자연마을마다 재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살았던 삼동동, 주수동은 물론 작은 규모였던 동산 동, 귀아랑 등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지금도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연동리 주민들의 주요 학살사건은 아래와 같다. 1948년 11월 3일: 김이영(56, 여)·박창오(21, 남) 모자 등 7명이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용담리 도령마루로 끌려가 학살됨 (용담리-학살터- 도령마루, 참조) 11월: 박창환(33, 남)·박창석(29, 남, 이명 박창호) 형제는 토벌대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2월 20일에는 형 박창앵(37, 남)과 여 동생 박연춘이 도두지서로 연행됐다가 박연춘은 풀려났으나 박 창앵은 행방불명됨 1949년 1월 20일: 고경학(53, 남)·정군옥(45, 여) 부부는 일본에서 귀국하여 오라 리 중대굴로 내려갔다가, 식량을 가지러 집에 가던 중 무장대에 게 납치된 뒤 피살됨 미상일: 서옥용(42, 남)·고○○(연령 미상, 여, 청수리) 부부는 집에 들이 닥친 토벌대에 의해 용담리 도령마루로 끌려가 총살됨 (용담리 -학살터-도령모루, 참조) 현재 정부에서 인정한 연동리 4·3희생자는 모두 112명(남성 98명, 여성 14명)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