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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제주읍 9. 연동리 연동(蓮洞)리는 157가호의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소를 기르며 살았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었다. 연동리는 4·3 시기 서동을 비롯해 삼동동, 동산동, 주수동, 도 호동, 성두동, 비월동, 귀아랑의 8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었고, 그중 삼동동과 서 동이 연동리의 시원이 되는 중심마을이었다. 연동은 1979년부터 신제주로 불리며 대단위 택지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80년 3월 제주도청 이전을 시작으로 도의회, 교육청, 경찰청 같은 주요 공공기관이 옮겨오며 실질적인 제주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해방정국에서 연동리에는 뛰어난 인물이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연동리에 서는 4·3 초기 이웃 오라리나 노형리와는 달리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 주 민학살사건은 1948년 11월 3일 발생했다. 이날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김규 만를 비롯한 7명을 용담리 도령마루로 끌고가 총살했다. 그 후 얼마동안 마을은 잠잠했다. 1948년 11월 중순, 토벌대는 제주도의 거의 모든 중산간 마을에 소개 령을 내리고 마을을 초토화했다. 그러나 연동리는 12월 초순까지도 조용했다. 토벌대는 1948년 12월 12일, 삼동동과 서동을 불태우며 연동리에서 첫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그 후 연동리 주민들은 인근 하천변에 있는 궤에 숨거나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토벌대에 잡혀 총살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