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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우익단체원까지 죽었습니다. 안두규는 나하고 같이 동·서광리 까지 순찰 다니던 대동청년단원입니다. 그는 힘이 세서 서청 몇 명쯤은 맨손으로 당해 낼 정도였지요. 사태가 악화되자 서청이 보복을 한 겁니다. 색달리 출신 박찬호는 국민 회 멤버로서 절대적인 우익입니다. 그런데 그는 서청 위에서 놀려고 했지요. 이승연은 부자였는데 서청이 자꾸만 물품을 강매하니까 이를 거절했다가 당한 것입니다.” 이 사건 희생자로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은, “대포리 - 김장국(23, 남), 오성욱 (25, 남), 이두성(27, 남), 이승택(32, 남), 임평문(30, 남) / 상예리 - 오동후(25, 남), 이태현(28, 남), 진문희(27, 남) / 색달리 – 김군석(26, 남) / 중문리 - 강기룡 (42, 남), 안두규(34, 남), 이승연(31, 남), 임한준(41, 남), 임행권(37, 남) / 하원 리 – 강흥규(40, 남)”이다. 그 후 1948년 12월 4일에는 중문지서로 연행됐던 월평리 주민 김성두(35, 남) 가 이곳에서 총살됐다. 토벌대는 청년들과 학생들을 집합시킨 뒤 김성두를 공개 총살했다. 12월 30일에는 강정리 주민 윤기선(17, 여)이 총살됐다. 윤기선은 시 집인 도순리와 친정인 강정리를 오가며 생활했는데 이를 의심한 경찰이 그녀를 연행한 뒤 총살했다. 대습이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