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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중문면 색달리, 하원리 주민들을 학살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희생자는 모두 15명이다. 이 날 희생자는 거의 마을 유지들이었는데 서청의 물품구입 강매를 거부하거나 부당 한 요구를 거절했던 인물이었다. 이 사건은 4·3 시기 서청의 횡포가 어느 정도였 는가를 쉬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날 사건에 대해 이치근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이날 죽은 사람 중에 다섯 사람은 중문리를 좌지우지했던 청년들이었어요. 신체도 좋아서 총 맞아도 몇 발씩 걸어가며 외치다가 쓰러졌다고 해요. 아주 일류 청년들이었 죠. 내가 아는 사람이 중문 출신으로 이승연, 임지우, 임한준, 강기룡, 안두규 씨들이에 요. 이분들은 운동도 잘하고, 달변가였어요. 특히 안두규 씨는 육지에서 들어온 분인데 요즘 같으면 주먹패의 두목 같은 사람이었어요. 서북청년단들이 와서 이 사람들한테 숨을 못 쉬니까 눈의 가시였죠. 힘으로도 당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렇 게 된 거예요.”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 4권(256~ 257쪽)은 이곳 학살사건을 계기로 서청 이 무소불위의 세력으로 변신했음을 보여주는 증언을 싣고 있다. “1948년 11월 19일 서청은 일부 주민들을 신작로변 속칭 ‘대수구우영’에서 집단학 살했다. 한 희생자의 동생은 ‘형은 서청이 물품구입을 강요할 때 이를 거절했다가 보복 을 당한 것’이라며 ‘이때 형을 포함해 18명이 함께 희생됐다’고 말했다. 이중 취재반이 확인한 희생자는 중문리의 강기룡(姜己龍, 49), 임한준(林漢俊, 39), 임지우(林枝祐, 36), 안두규(安斗奎, 34), 이승연(李承連, 31), 대포리의 이승택(李升澤, 31), 임평문(任 平文, 30), 오성욱(吳聖旭, 25), 김장국(金長局, 23), 이두성(李斗成, 23), 상예리의 진문 희(秦文禧, 29), 이태현(李太賢, 27), 오동후(吳東候, 24), 색달리의 박찬호(40대 중반) 와 김군석(金君錫, 25), 그리고 하원리의 강흥규(姜興奎, 39) 등 16명이다. 중문면 직원이었다가 경찰에 투신한 덕분에 겨우 화를 면했다는 이기호 씨는 희생자 들 각각의 처지를 들어가면서 이 사건이 앙심을 품은 서청의 보복학살임을 강조했다. 이 날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서청에게 밉보인 사람들입니다. 우선 면사무소 직원 으로서 임한준(회계과)과 김군석(산업계장)은 서청이 돈과 쌀을 강요할 때 거부한 것이 화근입니다. 또 임지우는 이발사였는데 서청이 매번 공짜로 이발을 하니까 핀잔을 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