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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선생 생가지(李鍾一先生 生家址)
이종일 선생 생가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이종일(1858~1925)이 나서 자란 집터가 있는 곳이다. 초가집으로 지은 이종일의 생가는 1986년에 옛 모습을 살려 다시 지은 것이다. 서쪽에는 1990년에 사당을 세워 이종일의 충절을 기리고 있으며, 유물과 함께 이종일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는 기념관과 체험관도 있다.
이종일은 태안의 양반 가문 중 하나인 성주 이씨 집안 출신으로 1858년(철종 9)에 태어나 15세가 되던 해인 1873년(고종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10여 년이 지난 1882년,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 근대 일본의 모습을 보고 귀국한 후 개화운동에 앞장섰다. 1896년에 독립협회가 활동을 시작하자 적극적으로 도왔고,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를 만난 후 천도교 활동을 시작하여 천도교가 경영하는 인쇄소인 보성사의 사장이 되었다. 순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였고,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를 통해 일제에 대항하며 천도교 조직을 이용한 민중운동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1일 3.1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 33명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해 독립선언문을 인쇄하고 전국으로 보냈는데 이 일로 인해 체포되어 2년 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하였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제2의 3.1운동을 계획했지만 곧 들켜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끝까지 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