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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현마을 주민 희생 터 여기는 1951년 2월 7일 당시 가현마을에서 살던 주민 123명이 일부 국군의 총칼에 집단 희생되었던 곳으로 당시 산청군(가현,방곡), 함양군(점촌,서주)지역에서 일어났던 네 곳의 집단 희생 터 중 하나이다. 이날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군인들은 아침 7시경 40여 가구를 뒤져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뒷동산으로 몰아갔다. 군인들이 마을 뒷산 높은 낭떠러지로 주민들을 몰아넣자 아비규환의 혼란 속에 몇몇 어린이, 노약자들은 팔,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실신한 사람도 많았으며 주민들은 이곳 논바닥으로 끌려와 희생 되었다. 군인들은 시체를 나뭇가지로 덮고 불을 질렀다. 이곳에서 123명이 희생되었으며, 자식만은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희생정신 덕분에 불타는 시체 속에서 윤한영(남, 18세)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그떄의 일을 전하였다. 2011.5 희생자 12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