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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나. 개요 중문면사무소는 1915년 5월 1일 일제의 도제(島制) 실시 이후 지금의 천제연 매표소 인근에 처음 건물을 마련했다. 그 후 1924년께 지금의 중문파출소 자리 (중문동 2113-2번지)로 이전됐다 장소가 협소해지자 1933년 우체국 자리(중문 동 2087-2번지)로 이전됐고, 1978년에는 중문동 1864-1번지로 옮겨졌다. 현재 이 건물이 1981년 중문면이 서귀포시에 통합되면서 중문과 대포, 회수, 하원 마 을을 관할하는 중문동사무소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문면사무소는 지금의 우체국 자리에 있을 때 4·3을 맞았다. 당시 면사무소는 1948년 11월 5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완전히 타버렸다. 2 토벌대는 무장대가 면사 무소를 기습하고 퇴각한 직후, 불타버린 면사무소 터에서 무장대의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공개적인 보복학살을 자행했다. 이날 면사무소 진화 작업을 마친 후 모 이라고 해서 갔던 이치근은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무장대 방화 후 토벌대가 와서는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면사무소를 진화시키고 나니 아마 열시가 좀 지났을 거예요. 여기 고○○라고… 무장대가 된 사람이 있어요. 이 분이 왜정 때 일본군 중사였어요. 그날 그의 어머니 강정생과 국민학교 선생이었던 이 승홍, 그리고 김덕화, 김석홍 일가족을 현재 우체국(당시 면사무소) 계단에서… 그 계 단에 세워놓고 진화에 참가한 사람들을 다 모이라고 해서 총살시켰어요. 그리고 이날 2차로 이찬석 씨가 총살됐어요. 그분은 중문리 구장이었는데 마침 그날 집안 제사였어요. 제삿날 피를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분은 살짝 총살현장에서 피신해 있었거든요. 보지 않으려고. 그런데 그 사실을 누가 고발했는지 모르지만 사상 범으로 그날 두 번째로 즉결처분된 거예요. 이찬석 씨는 당시 중문 일등 갑부고, 이장 이고, 인텔리였어요. 아무튼 이날 두 번, 하루에 두 번 주민들이 총살당했어요.” 이날 무장대 습격에 따른 희생자는 자신의 가게에 불을 지르려던 무장대에게 저항하다 살해된 박우순(23, 남)과 당시 집 안에 누워있다 무장대의 죽창에 찔려 다음날 사망한 박우순의 동생 박길문(1, 남), 중문지서를 방어하던 경찰 김호석 2) 4·3 시기, 무장대의 습격으로 면사무소가 전소된 곳은 구좌면과 안덕면, 중문면의 3개 면사무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