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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에 일어난 제1차 3.15의거는, 제2차 3.15 의거(4월11일~13일)를 낳은 어머니요 4.19혁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부당한 공권력을 휘두른 정권을 맞서다 9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낸 비극적 의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혈 시민 항거라는 역사적 의의는, 이와 같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산고의 자랑스러운 두 아들 김용실(21기)과 김영준(19기)은 제 1차 3.15의거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확고한 신념으로 의거에 뛰어들었던 김용실은 그날 밤 북마산파출소 앞에서 머리를 관통하는 총상을 입고 산화하였다. 내성적이며 책임감이 컸던 김영준은 마산시청 근처에서 하복부를 관통하는 총상을 입고 도립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3월 18일 끝내 숨지고 말았다. 두 열사는 1962년 4월 19일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建國褒章)' 받았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데 힘을 다하여 기여한 공젹이 뚜렷함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마산고등학교동창회에서는 모교와 손잡고 정문 쉼터에 두 동문을 기리는 추모동산을 조성하였고, 경남교육청은 이를 단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정작 가장 중요했으면서도, 제2차 의거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제1차 의거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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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열사(烈士) 추모 동산을 만드는 뜻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