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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중문면 상을 입음. 그 후 서북청년회 중심의 토벌대는 무장대가 물러가 자 보복학살을 자행해 주민들을 면사무소에 집합시킨 뒤 몇 명 을 끌러내 총살함 (아래 학살터–중문면사무소 옛터, 참조) 11월 19일: 11월 5일 무장대 습격 후 서청은 중문면에서 영향력이 컸던 중 문리, 대포리, 상예리, 색달리, 하원리 주민들을 좌면공립보통 학교(현 중문초등학교)에 구금했다 이날 중문리 대습이우영에 서 총살함 (아래 학살터–대습이우영, 참조) 11월 23일: 강오인(31, 남)·이정생(32, 여) 부부와 김영석(17, 남)이 도피생 활을 한다는 이유로 중문지서에 연행된 뒤 중문리 버리왓에서 총살됨 (아래 학살터–버리왓, 참조) 12월 5일: 경찰이 강계일(61, 남) 등 8명을 무장대 관련자라며 중문지서 로 연행한 뒤 신사터에서 총살함 (아래 학살터–신사터, 참조) 12월 17일: 경찰이 김성언(46, 남) 가족과 김여수(68, 남) 가족, 양두천(24, 여) 가족, 오병생(33, 여) 가족을 비롯한 20명을 도피자나 무장 대 가족이라며 연행함. 그 후 군인들이 신사터로 끌고가 총살함 1949년 1월 4일: 토벌대가 대포리와 상예리, 월평리, 하예리, 회수리 등 관할지 역 주민 31명을 도살장 옛터에서 학살함 (아래 학살터–도살장 옛터, 참조) 1월 8일: 김무생(43, 여)은 아들 고창준(21, 남)이 토벌대의 횡포를 피해 산으로 피신한 뒤 아들을 찾아내라는 토벌대의 협박에 못 이겨 다른 아들 고창영과 함께 찾아 나섬. 이들은 녹하지악 부근에서 고창준과 만났으나 김무생은 동사(凍死)하고, 고창준은 이후 행 방불명됨 1950년 8월 20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도 전역에 예비검속의 피바람이 불 기 시작함. 현재까지 확인된 예비검속 중문 희생자는 김승하 (54, 남)를 비롯해 김원하(32, 남), 김은부(22, 남), 김익만(21, 남, 교사), 김창수(36, 남), 이경주(27, 남, 교사), 이동석(18, 남), 임지생(18, 남), 임태권(30, 남) 9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