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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중문면 1. 중문리 중문면은 1915년 5월 1일 제주도제(濟州島制) 실시에 따라 좌면이 되었다가 1935년 4월 1일 중문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문리는 중문면의 면 소재지로 1981년 7월 1일 서귀포시에 합병돼 한 개 동이 될 때까지 행정과 산업의 중심지 였다. 현재 중문동은 행정동으로 산하에 중문동과 대포동, 하원동, 회수동의 4개 법정동을 두고 있다. 중문면사무소와 지서가 자리한 중문리는 4·3 시기 1구와 2구로 나뉘어져 있었 다. 1 1구에는 일주도로를 중심해서 형성된 본동과 바닷가로 2㎞ 가량 떨어진 성 천동이 속했고, 2구에는 산으로 5㎞ 올라간 녹하지오름 뒤쪽 움텅밭 일부와 섯단 동산 등의 마을이 포함됐다. 중문리는 4·3 시기 토벌대의 근거지였다. 1948년 11 1) 일제는 1914년부터 군(郡)과 면(面) 뿐만 아니라 동(洞)과 리(里)에 대한 말단 행정기관의 통폐합을 단행해 새로운 행정구역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 후기에 정착된 면리제까지는 바꾸지 못해 그대로 유지하면서 1917년 면(面)에 공공사무처리 능력을 부여하는 면제(面制)를 실시하고 기존의 동과 리(里)의 공유재산을 면으로 이관시켰다. 더불어 기존의 동과 이장을 폐지하고 새로운 구장(區 長)을 임명했다. 그 후 일제는 구장(區長)을 통해 주민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동·리의 자치적 운영 구조를 면으로 통합해나갔다. 이 시기 구장은 마을 공동체의 구심이 되는 주민 대표이면서 면 행정을 보조하는 이중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구장제는 일제강점 기인 1917년에 시작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일정 기간 존속했던 것으로 알 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