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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증언에 의하면, 연미마을은 두 차례에 걸쳐 방화됐다. 오라국교는 마을 2차 방 화 때인 1949년 1월 21일, 토벌대에 의해 전소되었다. 8 증언은 이어진다. “4·3 당시 근무했던 교직원으로는 박○○교장(부인은 경찰이라고 함), 교사 김세인, 강사 고○○, 김일중 등이 있었는데, 김세인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강사 2명은 토벌대 에 의해 사망했다. 마을과 더불어 학교가 전소된 후 학생들은 제주북교와 제주남교, 화 북교, 아라교 등지로 분산 통학하게 되어 통학거리가 더 멀어지고, 우천 시에는 교통이 두절되는 등의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에 당시 지역 유지들이 힘을 합쳐 1950년 6월 13 일 제주시 오라동 3080번지에 제주남국민학교 오라분교장으로 인가 받아 부지 1,450 평에 건물 2개 교실(40평)을 지어 1학년 2학급, 2학년 1학급으로 1950년 7월 3일 재 개교하였다.” (박기찬, 남, 1933년생) 예전 학교터에는, 옛 배움의 터전(옛 오라공립국민학교터)이라는 표지석이 세 7) 오라국민학교, 『향토지』, 제주:성심인쇄사, 1987, 27쪽. 8)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 교육계 피해실태조사 보고서』 , 2018. 오라국민학교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