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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영 (당시28세) 안동시 안기동 천주교묘지에 안장 1963년 경북 달성군 출생 1985년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봉화여고 부임 1987년 11월 안동교협 창립, 부회장에 피선, 부회장으로 활동 중 청송지역 산골마다 찾아다니며 조직확대를 위해 노력함 1988년 12월 청송 영양교협 창립, 총무부장 역임 1989년 8월 18일 해임 후 자취하며 전교조 활동을 계속함 1990년 2월 19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운명 |31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85년 경북의 봉화여고에서 교직의 첫발을 내딛은 동지는 모순투성이인 우리 교육현실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헌신과 희생을 통해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비록 현실이 동지의 이러한 노력마다에 벽을 만들곤 했지만 동지는 끝없는 자 기성찰과 각성을 통해 참교사로 서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다. 동지는 ’87년 교사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교사로서의 활동범위를 개인 에서 학교전체의 문제로, 그리고 드디어는 지역사회 전체와 나아가서 그보다 더 큰 대권력과의 관계로 파악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안동까지 뛰어다니게 되었다. 동지는 학교 소모임 건설과 청송교사협의회 창립을 위해 활동하였고, ’88년 12 월 청송교사협의회가 창립되자 교협의 살림을 맡아보면서 활동하다 해직되었다. 동지는 해직의 괴로움을 간직한 채 굳건하게 활동해 나갔다. 가르치던 제자들도 매일매일 찾아왔다. 하지만 동지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한번은 찾아온 제자들과 떡볶이집으 로 갔을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만 교단에 설 수 있다면 좋겠구나”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도 잠깐, 밤 이면 동지는 참교육 물품을 배낭에 가득 담고 이 산골 저 산골을 누비면서 선생 님들을 찾아다녔다. 그 가방 속에는 참교육의 복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끊임없 이 탈퇴한 동료교사를 부여안고 구석구석 전교조의 씨앗을 뿌려나갔다. ’90년 2월 19일 청송여중고의 졸업식에 해직된 교사들과 같이 참석하기로 한 동지는 불의의 사고로 운명하여 끝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동지의 유고집「그 숨결 남아 아직 성송같이 푸르른데」가 ’ 91년 2월 23일 출간 되었다. 끝내살리라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