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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현재 영원한 유산, 오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신앙
해방후 1948년 신인숙 사모와 유가족들은 서울로 이사를 하고 혜화동에 박봉진 목사 순교기념교회로 “혜화동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가 온몸으로 써 내려간 순교의 불씨는 선조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표지석이 되어 지금 철원성결교회에 남겨져 기억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박봉진 목사님의 죽음은 역사학자와 교회사에서 말하는 '순교의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진정한 순교입니다. 참된 순교는 '실제적인 죽음', '박해자의 신앙 증오', 그리고 '순교자의 자발적 수용' 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박봉진 목사님은 기독교 신앙을 탄압하려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억압에 맞서 우상숭배를 철저히 거부 하셨습니다. 나아가 일제와 타협하여 목숨을 건질 기회가 있었음 에도 오직 예수님을 향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이셨으며, 끝내 가혹한 고문을 피하지 않고 견디다 순국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한 박 목사님의 숭고한 항거는 역사학적 순교의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1943년 철원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타오른 진리의 빛은, 지금 우리의 예배와 공적 책임 속에서 다시 살아나 세상을 데우며 내일의 신자를 길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