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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共軍 第八師園 二三聯隊가 總攻擊을 敢行하여 二大隊長의 高地死守 命令을 받은 公은 敵을 최대한 가까이 誘引하여 殲滅하였으나 大規模로 밀려오는 敵軍에 高地九部稜線 까지 後退하여 白兵戦중 敵陣에 突入한 김명제하사의 戰死를 目擊하고 敵陣에 뛰어들어 六명의 中共軍을 射殺하고 機關銃一挺을 奪取하며 戰鬪가 계속되는 중에 壯烈하게 戰死하였다(一九五一・九・二)公이 戰死한 後에도 七中隊의 殘餘兵力은 죽음으로 七三四高地을 지켜야한다는 中隊長의 命令으로 끝까지 高地를 死守하여 七三四高地 防禦에 成功하였다. 七三四高地의 成功的防禦로 鐵原地區 戰闢의 勝戰에 契機가 되여 李承晚 大統領은 公을 大尉로 特進과 함께 乙支武功勳狀과 花郎武功勳章(二)을 受勳하였다. 또한 美國의 트루만대통령과 유엔군사령관·美第九軍團長으로 부터는 公을 代身하여 父 圭源이 表彰과 韓國軍 最初의 銀星勳章을 받았다. 公이 戰死후 遺骸는 서울 銅雀洞國立願忠園에 配金海金氏와 함께 安葬되었다. [西22-3503] 二〇二〇年 二月에는 大韓民國報動處에서 二月의 六.二五戰爭英雄으로 選定하여 公의 殺身報國情神을 國家에서 永遠히 기르는 表象으로 삼았다. 鳴呼痛哉라! 青雲의 꿈을 다 펴보지도 못하시고 二三歲의 젊은 나이에 魂魄을 祖國의 山河에 묻으셨으니 戰爭의 英雄예서 民族의 英雄으로,忠烈公 諱方慶祖의 忠節과 一門四忠 諱天章祖의 殺身의 情神을 継承하신 公의 愛國愛民을 길이길이 記憶하여 後世에 表象으로 삼고자 鎮川郡 安東金氏 按廉使公派參判公諱訓宗會에서 공의 生居에 碑을 새우다.
西紀 二〇二五年 十二月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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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제8사단 23연대가 총공격을 감행하자, 2대대장으로부터 고지 사수 명령을 받은 공(公)은 적을 최대한 가까이 유인하여 섬멸하였으나, 대규모로 밀려오는 적군에 밀려 고지 9부 능선까지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백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적진에 돌입한 김명제 하사의 전사를 목격하자, 공은 직접 적진으로 뛰어들어 6명의 중공군을 사살하고 기관총 1정을 탈취하며 전투를 계속하던 중 장렬히 전사하셨습니다 (1951년 9월 2일). 공이 전사한 후에도 7중대의 잔여 병력은 "죽음으로 734고지를 지켜야 한다"는 중대장의 명령을 받들어 끝까지 고지를 사수함으로써 734고지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734고지의 성공적인 방어는 철원 지구 전역(戰域) 승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공을 대위로 특진시킴과 동시에 을지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2회)을 수여하였습니다. 또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유엔군 사령관, 미 제9군단장으로부터는 공을 대신하여 부친 김규원(圭源) 님이 표창과 함께 한국군 최초의 은성훈장을 받았습니다. 공의 전사 후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배위(配位, 배우자) 김해 김씨와 함께 안장되었습니다. [묘역 번호 22-3503]
2020년 2월에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여 공의 살신보국 정신을 국가에서 영원히 기리는 표상으로 삼았습니다.
아아, 슬프고 통탄스럽도다! 청운의 꿈을 다 펴보지도 못하시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혼백을 조국의 산하에 묻으셨으니, 전쟁의 영웅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충렬공 김방경 조상의 충절과 일문사충 김천장 조상의 살신성인 정신을 계승하신 공의 애국애민을 길이길이 기억하여 후세의 표상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진천군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참판공 휘 훈 종회에서 공의 생거지(生居地)에 비석을 세웁니다.
서기 2025년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