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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湖義塾遺址碑(도호의숙유지비)
원래 1860년대 忠壯公(충장공) 후손 營將(영장) 南錫龜(남석구) 公(공), 承旨(승지) 南普永(남보영) 公(공), 儒學者(유학자) 南醫沃(남의옥) 公(공)이 만년에 설립한 宗塾(종숙)(도이리 174번지)으로 南圭熙(남규희), 南宅照(남택조) 及(급) 第公(제공)으로 이어지고 재단인 學糧楔(학량설)가 중도 해체되니 講楔(강설)를 조직 운영하고 他姓(타성)들도 수학하게 되어 義塾(의숙)이라 하다.
조선 말기 (1870-1891)에 忠壯公(충장공) 후에 登科者(등과자)가 18명이고 營將(영장), 府使(부사), 郡守(군수), 主簿(주부), 議官(의관) 등 出仕(출사)하였다. 이름 높은 스승으로 華西(화서) 李恒老(이항로) 선생 학통인 存齋(존재) 南文陽(남문양) 선생, 直庵(직암) 南本喆(남본철) 박사, 庸庵(용암) 沈元星(심원성) 선생이 있었고 독립운동과 기미년 대호지 4.4운동 주자로도 後學(후학) 南正(남정), 南相翊(남상익), 南柱元(남주원), 南相敦(남상돈), 南相洛(남상락), 南相集(남상집), 南相直(남상직), 南相殷(남상은), 李春應(이춘응), 李大夏(이대하), 田成喚(전성환) 선생을 들 수 있고 三學者(삼학자)인 南相赫(남상혁), 南相瓚(남상찬), 南天祐(남천우) 선생은 直庵(직암) 수제자이고 근세에 李載瑞(이재서) 成均館長(성균관장), 당진 석학 李炳台(이병태) 선생도 本塾(본숙) 출신이니 당시 도호(桃湖)는 私學(사학)의 명문이며 1930년경 廢塾(폐숙)되어 이에 흔적을 남기고자 함이다.
서기 2003년 10월 20일 東里(동리) 南仲祐(남중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