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晶月 羅蕙錫(정월 나혜석 : 1896~1948) 호는 정월(晶月) 구 한말 사법관을 거쳐 시흥군수, 용인군수를 지낸 나기정의 2남2녀 중 큰딸로 1896 수원면 신풍리(현 수원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중)를 제1회로 졸업하고 진명여고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본으 로 유학, 동경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1921년 우리나라 최초로 양화 개인전을 열었으며, 남편 김우영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길에 올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의 미술계를 직접 체험하며 배우고 돌아와 용주사 수원 포교당에서 개인전을 갖는 등, 우리나라 근대 미술 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문필가로서 자전적 소설 [경희]와 여성 계몽적 시 [인형의 집]을 발표하여 진보적 사회사상가로, 스스로 실천적인 여성 해방운동을 펼쳤던 선각자로도 활동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 참가자로 5개월간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1923년 남편 김우영과 함께 "의열단의 폭탄반입사건" 주동자들이 거사를 성공하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등,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열망했던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앞서갔던 선각자들이 다 그러했듯이 그 당시 사회의 몰이해와 냉대 속에 묻혔다가, 이제서야 그의 업적이 인정되어 정부는 2000년 2월 문화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2000년 2월 22일 정월 나혜석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