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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43 신앙의 사지(死地) 철원과 강요된 침묵 일제의 대륙 침략 요충지이자 억압의 최전선이었던 철원은 단순한 부임지가 아니었습니다. 박봉진 목사가 이곳에 섰을 때, 이미 이웃에 있는 철원감리교회 강종근 목사의 순교(1942년)로 철원의 대지에는 핏자국이 배어 있었습니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 들려온 동료의 부고는 두려움 대신 거룩한 표지가 되었고, 그는 "이곳 철원에서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다"며 기꺼이 교파를 넘은 순교의 연대를 이어받았습니다. 이윽고 1943년, 교단지 『활천』이 폐간되며 말씀의 언어마저 봉쇄되었습니다. 일제는 신사참배라는 이름으로 유일신 신앙을 꺾으려 했지만, 이 강요된 침묵의 시대에 신자들이 배운 것은 오히려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예배는 강요로 성립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모시는 일에는 타협이 없다”는 그의 굳은 다짐처럼, 시대의 침묵은 두려움의 결과가 아니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양심의 고요'로 깊어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