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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1941
돌봄의 목회와 철원에서의 시험
마흔둘의 늦은 나이에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한 그는 사중복음을 뼈대로 분명한 소명의 길을 걸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여주와 이천에서 사역하며, 그는 숫자 중심의 열기보다 사람의 성숙을 돕는 제자 훈련과 섬세한 돌봄에 집중했습니다. 부흥을 '더 크게'가 아닌 '더 깊게'로 이해했던 그의 확신은 1941년 철원성결교회로 부임하며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감시의 그물망이 촘촘한 곳이었지만, 예배당 안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 신자가 함께 찬송하며 복음의 평화를 누렸습니다.
예배가 지속될수록 압력은 강해졌으나, 신앙을 담대함의 훈련장으로 삼은 그는 흔들림 없이 제단을 지켰습니다. 나아가 “예배는 강요로 성립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오직 자유로운 사랑으로 예배 받으신다”고 또렷이 선포하며, 시련 앞에서도 결코 뽑히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증명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