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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양상현, 김한평 처, 우럭의원이라 불리던 이봉진 등 7명은 공회당 바로 아랫밭에 서 총살됐다. 당시 군인들은 주민들을 총살하면서도 연습삼아 쏘듯 모진 행동을 했다. 모오동 주민 송주형(2003년 83세, 남)은, “일곱 명을 두 줄로 세워놓고 먼 저 앞에 사람에게 총을 쏘았지. 다섯 명 정도가 쓰러지자 나머지도 같은 방법으로 또 쏘았어요. 총 한 방이 몇 명의 몸을 뚫을 수 있는지 실험한 것이었지요”라고 증 언했다. 토벌대는 그 후 남아 있는 남자들을 이끌고 무장대가 도로를 차단하며 파 헤쳐놓은 길을 복구하러 죽성으로 갔다. 시신들은 현장에 남아 있던 여성들이 수 습해 냇가에 임시로 토롱을 만들어서 묻었다. 다. 현황 학살현장은 지금의 오라1동 마을회관 옆으로,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한 식당 건물이 들어서 있다. 4) 주둔지 ① 사평마을 경찰파견소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오라2동 1393-1번지 나. 개요 초토화됐던 오라리 마을 일부가 재건되면서 사평마을에 경찰파견소가 들어섰 다. 주민들은 주둔 경찰의 감독 하에 성을 쌓고 경비를 섰다. 파견소에는 경찰 5 명 정도가 주둔했고, 주민들로 구성된 특공대원 2명이 번갈아가며 경찰을 도와 근무했다. 당시 대부분의 주민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성을 경비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파견소 경찰의 식사도 주민이 담당했다. 당시 파견소 건축위원장과 특공대장을 했던 송주형(2003년 83세, 남)은, “우린 굶어 죽으면서도 보리밥에 쌀을 섞어 올려야 했고 생선이라도 하나 올려야 했다. 파견소 이광철 주임의 횡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