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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s~1923
평택에서의 훈련과 양심의 습관
1890년 평택의 검소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기에 금은세공 장인으로 일하며, 성실함으로 얻은 소득을 이웃과 교회를 살리는 통로로 흘려보냈습니다. 그에게 신앙과 노동은 하나였고, 사중복음은 교리 이전의 삶의 질서였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일하며 조용하지만 깊게 자라난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체포와 수감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유와 존엄을 택했습니다.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그는 신앙이 곧 공적 책임에 응답하는 용기임을 배웠습니다. 이때 깊이 새겨진 '양심의 습관'은, 훗날 권력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다”고 단호히 고백할 수 있었던 영적 훈련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1923년 평택성결교회 건축 당시, 그는 사재를 털어 건축비를 헌금하고 현장에서 땀을 보태며 앞장섰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신앙이 단지 기분이나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구조와 공간을 만드는 일임을 배웠습니다. "사업의 열매를 주의 집에 돌려드린다"는 기쁨으로 공동체의 자립을 도우며 한없이 낮아졌던 그는, 훗날 목회자가 된 뒤에도 이렇듯 집을 짓는 마음으로 사람을 세워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