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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충문(四忠門) 이 정문(旌門)은 충신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천주(金天柱)와 그의 아우 천장(天章) 아들 성추(聲秋) 조카 성옥(聲玉) 등 4명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영조4년(1728)에 이인좌가 난을 일으켜 청주와 진천을 함락하고 이지경(李之景) 자칭 진천 현감이 되어 백성을 괴롭힐 때 진천 사석리에 거주하던 아들 숙질 형제간 4명이 의거의 뜻을 갖고 동지를 모아 무기도 없이 쇠스랑 괭이 등으로 진천을 탈환하기 위하여 습격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여 전사하였다. 이 같은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국왕은 정문(旌門)을 내리고 향제(享祭)케 하였으며 그뒤 성추 성옥도 고종 22년(1885)에 병정(倂旌)케 함으로써 사충문(四忠門)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들이 싸울 때 쇠스랑으로 싸웠다 하여 속칭 쇠스랑 충신이라고도 하였다 이 정문은 목조와가 맷배집으로 1958년에 개축하고 1979년에 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