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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당시30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59년 전남 신안군 비금면 출생 1984년 10월 1일 현대 엔진 공업에 입사, 상기철구 공장 기능직 사원으로 근무 1987년 9월 12일 현대중공업 구사대 차량에 깔려 중상 1989년 5월 16일 612일간의 사투 끝에 운명 |29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87년 7, 8월 노동자 대투쟁에 앞장섰던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거대한 함성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그 힘으로 현대그룹과 그룹노조 협의회는 9월 1일까지 임금 협상을 끝내기로 합의했으나, 협상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2만여 명 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시청 앞까지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뜻 모를 시청 방화사건에 휘말려 공권력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노조 상집간부가 구속되고, 다행히 피해있던 현중노조 총무부장 동지가 조합원들의 호위를 받으 며, 항의집회를 주도하고 있었다. 당연히 회사와 경찰은 현중노조 총무부장을 잡 기위해 혈안이 되었다. 뜨거운 동지애로 구속자 석방을 외치는 중공업 노동자들 의 쟁의를 지원하기 위해 9월 12일 오후 3시 현대엔진 노조 사무실에서 노조 협 의회 모임이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괴한 25~30명이 흰색 승용차 3대와 12인승 봉고차를 타고 나 타났다. 현대엔진 노조사무실로 들이닥쳐 현중노조 총무부장을 무차별 폭행하여 실신케 한 뒤 봉고차에 밀어 넣었다. 이에 엔진노조 임원들이 봉고차의 앞을 가로 막고 있자, 동지와 여러 명의 조합원들이 합세하였다. 여러 사람의 저지에도 봉고 차는 미친 듯 계속 앞으로 나가려 하였고, 동지가 봉고차 앞면에 들이 받치면서 쓰러졌다. “사람이 깔렸다. 세워라”고 여러 사람이 외쳤으나“밀어부쳐”라는 구사대 지휘 자의 명령에 동지의 대퇴부가 앞바퀴에 낀채 5m가량 끌려가 온 몸이 으스러졌다. 실로 생각하기조차 몸서리치는 순간이었다. 이때 200여명의 엔진 조합원이 몰려 와 7명의 구사대를 붙잡아 조합사무실에 넘겼다. 7명 모두 중공업 총무부소속으 로 상부의 명령을 받고 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노조는 곧바로 동지를 해성 병원으로 옮겨 긴급 치료를 받게 했으나 6주의 진단이 내려졌다. 손가락이나 발 가락이 금이 가도 6주 진단이 나오는데 온 몸이 으깨어진 중환자 진단이 겨우 6주 라니… 가진 자의 편에 빌붙어 인간의 기본 양심마저 외면하는 썩은 사회의 한 단 면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노동자는 없었다. 이후 엔진 조합원들에게 붙잡힌 7명의 구사대는 곧 경찰에 넘겨졌으나, 다음날 모두 풀려났고, 구사대 책임자는 20일 후‘경찰의 날’에 모범 시민상을 받았다. 그리고 동지는 병원에서 612일간의 사투 끝에 결국 운명하고 말았다. 끝내살리라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