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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서귀면 이 발발한 이후에는 모슬포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의 제5 숙영지로 몇 년 동안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4·3이 끝난 직후인 1955년, 사법보호위원회가 이곳에 가나안마을(영천마을로도 불림)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을 조성했다. 처음 50여 가 호의 주민들이 들어왔다.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때 정착한 사람들 중 절반 에 해당되는 20여 가호가 제주도민들이었고, 나머지는 외지출신자들이었다고 한 다. 설립 당시 제주검사장과 도의회의원들 간에 사업 성격을 놓고 큰 다툼이 벌이 지기도 했으나 가나안마을 정착사업은 나중에 난민귀농정착개척단이 맡아 진행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인정한 상효리의 4·3희생자는 모두 46명(남 40명, 여 6명)이다. 1) 4·3성 ① 동상효성 가. 소재지 서귀포시 동상효로 8-8 (상효동 448-7번지 서쪽 경계) 일대 나. 개요 1948년 12월 초, 신효리와 하효리로 소개를 갔던 동상효 주민들은 힘들게 피 난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다음해인 1949년 잠시 재건돼 올라오기는 했으나 채 두 달도 못 채우고 다시 소개를 가야 했고, 1950년 4월께가 되어야 고향마을에 정착할 수 있었다. 14개월 만이었다. 동상효 4·3성은 1950년 4월부터 모든 주민이 동원돼 한 달 가량 쌓았다. 먼저 3.5m 높이의 내성을 쌓고, 내성에서 5m 밖으로 2m 높이의 외성을 쌓았다. 그런 다음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구덩이를 파고 볼레낭가시나 구가시낭을 잘라다 담아 놓았다. 내성에는 동쪽을 제외한 세 방향으로 성문을 만들어 주민들이 출입하게 했다. 무장대의 침투를 감시하기 위해 망루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