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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지금도 당시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며 대나무숲, 올렛길과 마을길의 흔적이 곳곳 에 남아 있다. 라호텔 북쪽에는 2001년 4월에 세운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서있 다. 2005년 연북로가 개설되면서 어우눌 마을터는 두 개로 나뉘어졌다. 현재 연 북로를 따라 신화위더스빌 더 샵 30차, 라호텔, 카페, 오름 주유소 등 건물들이 속 속 들어서며 더욱 도시화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 어우눌 여기는 1948년 초겨울 4·3사건으로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제주시 오라동 의 한 자연마을, 어우눌마을터이다. 약 4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어우 눌은 제주시 외각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1904년 문음서당(文陰書 堂)이 개설되자 도내의 인재들이 모여들어 향학열을 불태웠다. 마을 아랫녘에는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치욕적인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오라리의 이응호, 김좌 겸 등 제주도 각 지역 유림대표 12인이 모여 일제에의 결사항쟁을 맹약하며 집의 계(集義契)를 결성하고 “조선의 치욕을 설원(雪怨)한다”는 의지를 바위에 새겨넣 은 조설대(朝雪臺)가 있어 마을의 기개를 지금까지도 드높여주고 있다. 4·3사건은 이 마을을 피해가지 않았다. 폐촌 후 일부 주민들은 오라리 등지로 삶의 근거지를 옮겨야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눈 덮인 벌판을 헤매야했다. 이 마을에서는 당시 주민 100여 명(호수 23호) 중 약 13명이 희생되었다. 4·3을 거 치면서 오라동에서 잃어버린 마을은 어우눌 이외에도 고지레(13호), 선달뱅디(6 호), 해산이(15호)가 있다. 다시는 4·3사건과 같은 비극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라며 이 표석 을 세운다. 2001년 4월 3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