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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개했다 이듬해 성을 쌓고 복귀했다. 그 후 1953년, 서상효는 상효 1리, 동상효는 2리로 분리됐다. 상효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0월 9일: 산에서 일을 하던 오병칠(19, 남)을 토벌대가 총살함 11월 6일: 보초 근무를 서던 오홍하(41, 남, 전 면서기)가 무장대에 피살됨 11월 12일: 토벌대가 동상효에서 고희옥(38, 남)과 고남홍(31, 남)을 연행 한 후 동홍리로 끌고가 총살함 11월 13일: 토벌대가 강성주(41, 남)를 비롯한 4명을 동홍리 비석거리로 끌고가 총살함 11월 30일: 강경수(34, 남)를 포함한 4명을 경찰이 연행한 후 다음날 정방 폭포에서 3명은 총살하고, 1명은 방면함 12월 14일: 토벌대가 김화길(24, 여)·오원희(2, 여)·오정희(2, 여) 모녀를 신 효리 말축밧 길가에서 총살함. 열흘 뒤 남편 오봉현(25, 남) 역 시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1948년 12월 초순 소개한 이후에도 동상효 주민들에 대한 학살은 수시로 벌어 졌다. 동상효는 1949년 4월께 마을에 돌아왔다. 그러나 채 두 달을 살지 못하고 다시 소개를 해야 했다. 그 이유를 주민들은 무장대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 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당시 마을 경찰 책임자였던 홍주임이 자신이 요구한 숯 을 주민들이 내주지 않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재차 소개하도록 했다고 증언한다. 동상효는 1950년 4월이 되어서야 2차 마을재건을 시작했다. 성쌓기가 시작됐 다. 당시 성은 40여 가호를 감싸는 규모로 안성과 바깥성을 구분해 이중으로 쌓 았다. 그 후에도 주민들은 편할 날이 없었다. 마을 성에서 보초를 서랴 바쁜 와중 에도 돈내코 위쪽에 있는 남당모루 주둔소에서 부역도 해야 했다. 신설마을 법호촌(法護村: 제주도 사법보호위원회의 후원으로 이룩된 마을이라 는 뜻)이 생긴 것은 1955년이었다. 원래 법호촌이 들어선 곳에는 4·3 이전에도 몇 가호의 주민들이 살았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4·3을 거치면서 토평으로 이 주했다. 그 후 이곳에는 2연대 군인들이 들어와 잠시 주둔하기도 했고, 한국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