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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서귀면 11. 상효리 상효리는 웃쉐돈, 웃쉐둔으로 불리다 한자이름으로 바뀌면서 상효리(上孝里)가 됐다. 상효마을은 크게 서상효(지금의 상효 1리)와 동상효(상효 2리)로 나뉘며, 4·3 후인 1955년 법호촌(상효 3리)이 설촌됐다. 서상효는 토평리, 동상효는 동쪽 으로 하례리, 남쪽으로 신효리와 이웃하고 있다. 서상효와 동상효의 거리는 약 1.5㎞ 정도로 한 동네이면서도 다소 멀리 떨어져있는 편이다. 서상효와 동상효는 아주 다른 형태로 4·3을 겪었다. 1948년 시기 서상효는 70 여 가호, 동상효는 50여 가호로 서상효가 주민이 더 많았다. 그러나 4·3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서상효가 단 한 사람인 반면 동상효는 50여 명으로 훨씬 더 많다. 이 렇게 서상효의 피해가 적은 까닭은 오운평(吳雲平)의 역할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에서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영향력이 컸던 오운평이 청년들을 단속 해 산쪽에 가담하지 못하게 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무장대는 오운평 의 집을 불지르고 오홍하(吳洪夏)를 살해하기도 했다. 1 반면 동상효는 일부 청년 들이 입산을 했고, 토벌대는 주민들이 입산자와 가깝다고 판단해 여러 차례에 걸 쳐 주민학살을 자행했다. 1948년 12월, 상효주민들은 토평리와 신·하효리로 소 1)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1998년, 162쪽.